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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삼미신과 삼위일체 서구의 미술관에 가면 세 여자가 서로의 어깨를 만지며 서 있는 조각상이 있다. 조각뿐만 아니라,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같은 유명한 회화작품 속에도 이런 포즈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전형적인 여성 누드를 ‘카리테스’(Charites)라고 한다. 카리테스는 그리스어 카리스(Charis)의 복수형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미와 우아함의 여신을 일컫는다. 로마 신화에서는 ‘그라티에’(Gratiae)라고 부르며, 미술사에서는 삼미신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에서 이들의 이름을 에우프로쉬네(Eu-phrosyne·기쁨), 탈리아(Thalia·꽃의 만발), 아글라이아(Aglaia·빛남)라고 밝히고, 제우스와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 에우리노메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더보기
안보관광 임태훈, 안보관광, 2013 안보를 관광하는 것이란 도대체 뭘까. 안보관광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안보와 가장 관련이 있는 비무장지대 지역이나 임진각 등을 둘러보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 혹은 외국인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둘러보는 것은 아니니 관광이나 여행이라는 말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파주를 중심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의 인근 지자체들은 이 안보관광에 꽤 열을 올리는 눈치다. 전쟁의 불안을 가장 뜨겁게 안고 있는 군부대 밀집지역이라는 편견을 깬 역발상이라고나 할까.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강조한 관광 활성화로 휴전선 인근의 도시들은 오히려 더 활기를 띠는 것 같기도 하다. 임태훈의 ‘안보관광’ 연작들은 안보와 관광이라는 이질적.. 더보기
거미로 태어난 엄마 마흔에 작업을 시작해서 일흔에 명성을 얻고, 팔십에는 스튜디오에서 작업만 하겠다고 외부 출입을 삼가며 하루 서너점의 작품을 완성했던 여자. 그리고 ‘새터데이 아티스트 토크’를 만들어 전 세계의 작가들을 자기 작업실로 끌어들였던 예술가. 내 삶의 큰 스승이기도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피스트리 보수공장(숍)을 운영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권위적이고 호색가였던 아버지와 조용하고 인내심이 강한 어머니 아래서 세 남매 중 둘째딸로 성장했다. 특별히 둘째딸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들인 영어 가정교사는 10년 이상 아버지의 정부로 살았다. 어머니는 둘 사이를 알고도 묵인했지만, 똑똑했던 부르주아에게 아버지와 정부를 감시하는 일을 맡겼다. 그때부터 부르주아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는 .. 더보기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임안나,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02, 2011 현대 문명의 특성을 속도의 질주로 보고 있는 속도사상가 폴 비릴리오에게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더 멀리 더 빨리 보고자 하는 지각의 병참학과 맞닿아 있다. 적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해 선제공격을 하는 것만이 가장 효율적인 승리인 것처럼, 우리는 인공위성과 감시카메라와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현실 사회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시각적 점령을 욕망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이 스펙터클해진다. 영화는 전쟁처럼, 전쟁은 영화처럼 시각적 강렬함을 흉내 내고, 결국 그 둘은 현실이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한다. 임안나의 ‘클라이맥스의 재구성’은 이 스펙터클 사회에 대한 시각적 은유다. 영화에서만 보던 무기들의 실제 몸값과 놀라운 파괴력을 알았을 .. 더보기
게이들의 수호신, 성 세바스찬 남성 누드의 전형인 아폴론을 제치고 르네상스에 새롭게 등장한 누드가 있다. 바로 성 세바스찬! 그는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305)의 근위장교다. 세바스찬은 당시 공인되지 않은 기독교 신자였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기독교도들을 격려한 탓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군중이 보는 앞에서 나무기둥에 묶인 채 화살을 맞는 형벌을 받았던 것이다. 화살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세바스찬은 황제를 찾아가 그리스도교를 전하고자 했고, 결국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는다. 7세기에 흑사병이 로마를 휩쓸었을 때, 로마인들은 마치 궁수가 활을 쏘듯이 신이 이 질병을 내려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화살에 맞아도 죽지 않았던 역사 속 인물인 세바스찬을 기억해냈다. 그들은 세바스찬을 흑사병에서 백성을 .. 더보기
아무렇지 않은 날 정주하, 불안, 불-안, 2005 바닷가에서 사내가 투망을 하고 있다. 밀물 때라 운이 좋으면 잡어라도 몇 마리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군데군데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여름의 끝 혹은 여름의 시작을 앞에 둔 바닷가 마을은 꽤 평화로워 보인다. 단정하고 안정감 있는 사진의 구도는 이 나른한 풍경이 영원할 것 같은 신뢰감마저 풍긴다. 다만 오른쪽으로 눈에 들어오는 원자력 발전소의 육중한 존재감이 조금 거슬릴 뿐이다. 사진 속 일상은 이 생뚱맞은 콘크리트의 돔에 아무런 이질감도 느끼지 않는 눈치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설 때마다 그토록 무수한 반대 여론에 부딪혔건만, 막상 사진으로 보니 아무 일도 없어 보인다. 콘크리트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평범한’.. 더보기
우울의 창조력 11월 말은 가장 멜랑콜리하다. 이 멜랑콜리한 느낌이 적어도 내겐 슬픈 행복이다. 심연의 상상력을 끌어올리는 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멜랑콜리의 감정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창의적인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멜랑콜리는 ‘검은 담즙(melaina chole/black bile)’이라는 뜻으로 우울로 해석된다. 15세기 말,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중세의 체액우주론(humoral cosmology)과 더불어 점성학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 말해 점성술적인 견해와 신화적인 비유들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멜랑콜리의 행성을 토성(saturn:새턴/사투르누스/크로노스)으로 삼고, 전통적으로 흙, 겨울, 건조, 차가움, 북풍, 검은색, 늙음과 관련지었고, 그 특징을 내향.. 더보기
라파엘로의 숨겨놓은 연인 라파엘로는 서른일곱에 미혼으로 죽었다. 당대 인기화가로 교황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교황의 주선으로 만난 질녀를 마다하고 짧은 생애 동안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라 포르나리나’라는 여자다. ‘라 포르나리나’는 ‘제빵사의 딸’이라는 뜻으로, 그녀의 본명은 시에나 출신의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다. 라파엘이 로마에서 일하던 12년 동안 그의 정부로 지낸 여자다. 르네상스 미술사가 G 바사리에 따르면 “라파엘로의 성품은 너무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서 짐승들까지도 그를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여리고 섬세한 외모의 소유자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미소년 같은 품새는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꽤나 자극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가 .. 더보기
사랑의 절정이란 이런 것? 수년 전 루브르미술관에서 목격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날 놀라게 했다. 몇 번째 루브르를 방문했지만 한번도 이 반쯤만 엎드려 누운 여자(?)의 실체를 제대로 목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너스인 줄만 알았던 이 여자는 사실 헤르마프로디토스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남녀추니, 어지자지, 즉 양성체의 인간이다.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제우스가 태어난 프리기아의 이다산에서 님프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란 그는 15세에 세상 구경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남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살마키스라는 호수의 요정이 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렸다. 살마키스는 그를 소문난 미소년인 에로스로 착각하고 열렬히 사랑고백을 한다. 자기를 애인으로 삼아달라고, 그렇게만.. 더보기
이런 결혼식 어때요? 흥겹고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는 결혼식 장면이다. 허름한 곡식창고에서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난한 농민의 혼례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풍속을 흥미롭게 그려낸 피테르 브뤼헬은 종종 농부로 변장을 하고 동네 행사에 몰래 참여하곤 했다. 테이블을 사선으로 배치하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을 크게 그려 오른쪽을 강조하는 구성방법은 당시로선 매우 독특한 것이다. 카메라가 없던 시기에 마치 사진 스냅 샷과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정작 혼례식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신부는 이 잔치와 고립되어 있다. 초록색 휘장 아래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쓴 신부는 먹고 마시는 하객들 사이에서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랑 비슷한 인물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결혼식 저녁까지.. 더보기
뒷모습이 아름다운 남자 회화에서 뒷모습은 꽤 매력적인 소재다.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 창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뒷모습은 아련하게 매혹적인 것이다. 화가들은 왜 뒷모습을 그렸을까? 뒷모습만을 단독적으로 그리는 것이 등장하려면 19세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뒷모습이 그려졌던 거다. 낭만주의의 가장 기본적 정조는 동경이다. 동경은 무한에 대한 사랑, 즉 먼 곳을 사랑하는 것이다. 먼 곳에 대한 동경은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으로 나뉜다. 19세기적 관점으로 볼 때, 시간적인 먼 곳은 고대와 중세시대이며, 공간적인 먼 곳은 근동인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혹은 극동인 인도와 중국, 일본과 같은 곳이다. 이런 낯선 것, 이국적인 것, 그로테스크한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낭만주의의 모토인 것이.. 더보기
눈먼 소녀의 센스 존 에버렛 밀레이는 영국이 자랑하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영국의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진보적 예술가 단체로 르네상스 전성기 화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미술운동) 화가다. 이 그림은 1854년 화가가 영국의 서섹스의 윈첼시 지방 근처에 머무는 동안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다. 근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중시 사상을 가졌던 라파엘 전파의 거장답게 이 그림은 산업혁명으로 동공화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화려한 색채와 치밀한 세부 묘사와 더불어 시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고아로 보이는 두 소녀가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남루한 옷차림과 무릎 위의 손풍금으로 미루어 거리의 악사로 생계를 .. 더보기
몬드리안의 ‘데 스틸-스타일’ 몬드리안은 자연을 혐오했다. 칸딘스키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창밖의 나무가 보기 싫다고 창을 등지고 앉을 정도였다. 그는 자연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는데, 그것이 너무 변덕스럽고 무질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몬드리안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초토화되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었으니, 자연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상향에 관한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네덜란드의 한 소도시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은 종교적 환상에 빠져 있던 아버지와 자주 아픈 어머니 사이에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 서른 살쯤 파리에 정착하게 된 그는 신지학(Theosophy·보통의 신앙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한 본질에 관한 지식을 신비한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로 알아가고자 하는 종교철학)이라는 학문에 .. 더보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키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진 그림 중 하나는 클림트의 ‘키스’다.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가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이 ‘키스’가 지닌 의미를 은밀히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명성이란 항상 오해의 총합에 지나지 않으니까. ‘키스’는 클림트의 나이 45세, 그의 완숙기에 만들어진 주옥같은 작품이다. 형식을 보면 황금색 색채와 아르누보 문양으로 되어 있다. 빈분리파(Wien Secession·‘분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 활동을 목적으로 결성됐음을 의미)의 우두머리인 클림트가 인상주의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려준다. 인상주의로부터는 빛의 사용법을, 아르누보로부터는 자연의.. 더보기
잭슨 폴록의 캔버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은 경매에서 수백억원에서 천억원대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 최고가로 낙찰되곤 한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 저 정도 그림쯤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로 생각했다. 그런 폴록에 대한 폄하의 시선이 바뀐 건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서 회고전을 본 이후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림이 진정 영혼 혹은 정신이 물질화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자 그림을 보고 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안겨준 사건이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유럽 중심의 미술이 미국으로 옮겨지던 1940~1950년대에 태어난 가장 미국다운 미술 양식이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추상’이란 회화의 형식을, ‘표현’이란 그 내용을 의미한다.. 더보기
세잔의 사과, 먹고 싶지 않은 세잔의 사과는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이빨이 작살날 것 같다. 그만큼 딱딱하고 견고해 보인다. 보통 세잔은 사과 하나로 미술계를 제패한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사과와의 인연은 부르봉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훗날 프랑스 유명 문학가로 성장하게 될 에밀 졸라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파리에서 온 졸라는 특유한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그때마다 세잔은 졸라를 두둔했다. 그런 어느 날, 졸라가 세잔의 집으로 사과 한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사과로 진짜 우정이 시작되었던 것! 그러나 세잔이 사과를 그린 것은 단순히 우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잔의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정물화 한 점을 그리기 위해 100번 이상 작업했고, 인물화를 그릴 때도 모델을 15.. 더보기
릴케와 로댕의 섬세한 인연 “니콜라스 3세의 발이 울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 로댕은 벌써 알았던 것이다. 우는 발이 있다는 것을, 완전한 한 인간을 넘어서 울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모든 땀구멍에서 솟아나는 엄청난 눈물이 있다는 것을.” 나를 울컥하게 만든 릴케가 쓴 로댕론의 한 대목이다. 젊은 시절 릴케는 로댕의 비서였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전시 중이던 로댕의 제안으로 1905년 9월15일부터 1906년 5월12일까지 로댕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비록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사소한 오해로 결별했지만, 릴케는 로댕의 위대한 작품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강연과 글을 쓰는 등 로댕을 전파하는 사도 역할을 했다. 릴케는 로댕을 만난 것을 일생의 큰 행운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위대한 조각가를 만났던 일이 어떤 문학작품보다 자신.. 더보기
책과 해골, 헛되니 어쩌라구! 책 그림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 그래서 화가들도 즐겨 그린다. 미술에선 이런 걸 소재주의라고 부른다. 호감 살 만한 소재로 가볍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말이다. 그런데 책 위에 해골이 놓여 있다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우리라면 거부했을 법한 이런 그림을 네덜란드인은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취향을 담은 네덜란드 정물화를 일컬어 바니타스(vanitas·허무, 허영, 영어는 vanity)화라고 한다. 사실 모든 정물화는 바니타스를 의미한다. 특별히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명명할 때는 해골, 책, 골동품 등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보다 직설적인 메시지를 드러내는 경우이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30년전쟁’ 이후 1650~1660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그려진.. 더보기
니케, 예술이란 이런 거야! 유경희 | 미술평론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나의 멘토의 게스트룸에는 ‘사모트라케 여신의 승리’가 걸려 있다. 물론 복제된 포스터다. 나는 일년에 일주일 정도는 그 방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이 작품은 고즈넉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니케(나이키) 여신상은 기원전 190년께 제작된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 조각이다. 로도스섬 사람들이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상은 승리의 감격을 알리기 위해 니케가 하늘에서 뱃머리에 내려앉는 순간, 갑자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휘날리게 해 다리에 감기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 고고학 발굴팀이 1863년 에게.. 더보기
생명나무 사려니 숲에서 한 그루 나무가 피어나고 있다. 아무렴 꽃도 아닌데 피어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무는 분명 가지마다 주렁주렁 빛을 매단 채 새롭게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깊다 못해 영험한 숲속이나 잔잔하다 못해 그윽한 바닷가처럼 나무가 태어나는 숙연한 장소들은 이 심증을 훨씬 굳히게 만든다. 마치 영화 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자연이 온 힘을 쏟아부어 한 그루 나무에 땅 밑의 모든 기운들을 모아주고 있는 듯한 숙연함마저 든다. 이정록은 이렇듯 한 그루 나무를 성스러운 장소로 옮겨와 새롭게 생명을 주는 일을 벌이고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이정록의 행위에 쓰이는 나무 또한 예사로울 수가 없으니, 작가에게 작품 속 나무는 ‘신목’이나 다름없다. 무속신앙에서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만나는 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