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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희생양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쓴 사람’을 비유한다. 희생양 덕분에 진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쉽게 잊혀져 배후의 인물로 남아있게 된다. 이렇듯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사소한 희생을 치른다는 희생양의 메커니즘에는 음모와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신화학자 프레이저는 “우리 죄와 고통을 다른 어떤 존재에게 떠넘겨 우리 대신 감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개인에게는 익숙한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미개인에게만 있겠는가? 오늘날 더 미묘하고 저열한 방식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희생제의에서 왜 양인가? 아마도 동물 중에 가장 인간적인 것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죽여서는 안되는 순하디 순한 동물을 바쳐야 그런 살해행위가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만큼 드.. 더보기
밤에 밤은 천의 얼굴이다. 그때는 한없이 울적거리다가도 어느 한순간 생각이 가볍고 명료해진다. 깊은 어둠 속에서 마음은 무서움과 그리움 사이를 줄타기도 한다. 단지 해가 사라진 시간이라고 하기에 밤은 너무도 묘해서 달밤은 해가 뜬 낮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윤아미가 밤을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자신에게 빗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에게 밤은 숨겨진 또 다른 내가 출현하는 시간이다. 감정이든 사람이든 숨길 때는 뭔가 사연이 있기 마련. 너무 아끼거나 남 앞에 드러내기 멋쩍을 때 우리는 은연중에 감춰 버릇한다. 그러므로 윤아미가 밤에 만나는, 혹은 밤에만 꺼내놓는 자신은 공인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상상의 세계에 사는 아이처럼 엉뚱하고 짓궂기도 하고 .. 더보기
달리가 그린 솔(Soul) 푸드 어릴 적 요리사를 꿈꾸었던 달리는 부엌을 동경했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달리에게 부엌은 금지령이 내려진, 그럴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온 신비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여자들로 북적이고 활기 넘치는 부엌에 잠입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며 늘 그곳을 서성거리곤 했다. 부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죄악이라고 배웠던 달리는 그곳에서 일하는 육감적인 하녀들의 땀내, 흩어진 포도송이, 끓고 있는 기름, 벗겨진 토끼의 가죽, 마요네즈를 뿌린 게 다리 등의 열기와 향기를 음미했다. 추억은 언제나 향기로 각인되는 것이다! 특별히 달리는 식사를 신을 받아들이는 성찬식처럼 신비롭고 거룩한 행위로 여겼다. 더군다나 그는 작업에 몰두할 때 빵과 물만을 먹으면서 지냈다. 마치 그림 그리는 행위를 예수의 고행과 동일시했.. 더보기
포토제닉 드로잉 예쁘다 이 꽃. 아니 더 정확하게는 꽃 사진이. 꽃을 너무 꽃같이 찍은 사진을 두고 예쁘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불멸의 생명력을 가졌다 한들 향기도 입체감도 없이 인화지 위에 핀 꽃이 어찌 실물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 속에 핀 꽃은 진짜 꽃과는 다른 매력을 가져야만 한다. 사진가 구성수의 야생화는 얼핏 보면 수수하지만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자태의 뽐낸다. 우선 찰흙판에 꽃을 얹고 고무판으로 눌러 음각을 만든다. 이 위에 다시 석고시멘트를 부어 굳히면 화석처럼 꽃의 가느다란 형태까지가 모두 살아있는 양각 부조가 된다. 이 위에 본래 야생화가 지닌 색감으로 색을 칠한 뒤 사진으로 촬영한다. 찰흙판에 눌린 꽃은 꽃밥이며 꽃잎, 이파리들이 독특한 모양으로 .. 더보기
집의 이름, 인문정신의 출발점 내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의 이름은 ‘이로재(履露齋)’이다. 뜻으로는 ‘이슬을 밟는 집’인데 에 연유한다. 어느 옛날 노부를 모시고 사는 한 선비가 부친이 아침에 일어나시기 전에 겉옷을 걸치고 부친 처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시면 따뜻해진 겉옷을 건네드렸다는 이야기다. 새벽녘에 이슬 앉은 마당을 밟아야 하는 집 ‘이로재’를 의역하면, 효성이 지극한 가난한 선비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1990년대 초, 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내게 집 설계를 의뢰했을 때는 그 밀리언셀러의 책이 나오기 전이어서 학자 신분에 집 지을 돈이 넉넉할 수 없었다. 내게 준 설계비도 충분치 않다고 여겼는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200년 된 현판을 답례로 주었는데, 내.. 더보기
[기고]새해, 분노·절망 씻겨줄 예술을 기다리며 2015년 새해가 밝았다. 2014년의 어두운 그림자가 마음에서 채 씻겨나가기도 전에 2015년의 뜨거운 해를 다시 마음으로 받았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걸러내지 못한 것들이 계속 쌓이면서 두꺼운 퇴적층을 형성한다. 분노를 용서로 바꾸지 못하면 더 깊은 분노가 쌓이고, 절망을 희망으로 대체하지 못하면 희망의 싹은 없어진다. 우리는 2014년의 분노와 절망을 깨끗히 씻어내고 2015년을 맞이했는가? 풍성했던 잎을 떨궈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나무처럼 지난 감정의 묵은 때를 벗겨야만 옹골찬 미래를 열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2014년의 감정을 걸러내고 정화해야 한다. 그렇게 감정의 응어리를 푸는 데 예술만 한 것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을 울리는 예술이다. 영혼.. 더보기
손들의 춤 더 이상 손은 몸의 한 부분이 아니다. 이 손들은 무엇을 붙잡으려 하는 것일까? 무엇을 어루만지려 하는 것일까?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손들은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살짝 닿아 있고, 어떤 부분에서 보면 친밀하게 맞닿아 있다. 저 부유하는 아련한 손들은 시선과 응시라는 내적 필연성에 의해 일체가 되어 있는 동시에, 영원히 합일되지 못할 운명에 대한 암시 같기도 하다. 로댕의 ‘대성당’은 원래 분수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다. 휘어진 활 모양의 두 손 사이로 물이 솟아오르도록 계획되어 있었던 것. 처음에는 ‘언약의 궤’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나중에는 ‘대성당’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단순한 구성에서 느껴지는 기념비적인 분위기가 성스러운 감정을 갖게 한다는.. 더보기
그 겨울, 한강 몹시 흐린 날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우울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흐린 눈발 속 행인들은 죄다 어두운 무색옷을 걸쳤다. 옷의 두께가 시린 생을 다 녹이지는 못하는지 몸은 계속해서 움츠러들고 있다. 숨을 곳도, 가려줄 곳도 없는 탁 트인 한강 위로 귓불을 휘감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지금의 한강대교인 한강인도교 위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사실은 기막힌 구도 덕분이겠지만, 사진 속 풍경이 하도 추워서 저 멀리 한강철교가 정말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저 멀리 점점이 사라지는 행렬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저 뿌연 풍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무겁고 축축하고 어두운 겨울 날씨는 엄연한 현실이다. 눈 위로는 그 현실에 순응한 혹은 거역한 발자국들이 .. 더보기
잃어버린 영혼, 안드레이 류블로프 알음알음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화가 선배로부터 건네받은 영화가 A 타르코프스키의 (1966)였다. 15세기 탁월한 성화를 남긴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이자 수도사였던 안드레이 류블로프(1360~1430)를 소재로 한 영화다. 흑백영화는 전율 그 자체였고, 마치 천국의 열쇠를 쥔 사람처럼, 지인들에게 발설하고, 선물하고, 강권했다. 인생에서 이런 드문 만남은 일종의 ‘에피파니(Epiphany·신의 현현)’가 아닌가! 류블로프의 대표작 ‘성삼위일체’는 러시아 정교에서 최고로 손꼽는 이콘화다. 예수와 성가족을 그린 이콘(icon)은 기독교 예배를 위한 그림을 말하는데 주로 동방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이 그림은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원 중 하.. 더보기
암에 관한 백과사전식 해부 암은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공포다. 이 공포는 극심한 통증, 끝없는 두려움, 슬픈 이별이라는 말들을 동반한다. 분명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세포지만, 내 몸의 일부라 하기에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어 헛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덩어리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 의술이라는 이름을 빌려 병원은 수술도 하고 처방도 하지만, 그 과정은 이성적이다 못해 차갑고 냉정하게만 느껴진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병을 핑계 삼아 마음이 분열을 시작하는 이유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의사에게 암은 무엇일까. 그것은 낱낱이 파헤쳐야만 하는 연구와 정복의 대상이다.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외과의사 노상익은 자신의 블로그에 암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수기로 써내려간 진단서를 비롯해 처방 내용, 환자의 병력, 수술 마지막 단계.. 더보기
조강지처도 섹시할 때가 있었다? 그리스 최고의 여신 헤라는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헤라를 그린 그림이 드물고 걸작이 없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조강지처라는 한계, 그러니까 더 이상 한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예술가들을 시큰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헤라는 질투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가정과 결혼의 수호신이다. 안정적인 가정과 결혼을 위해 바람기 많은 남편을 지키려다보니 질투가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된 것이다. 어쨌거나 헤라는 그리스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헤라를 어떻게 유혹했을까? 그는 그녀를 품고 싶은 욕정에 이끌렸지만 무턱대고 덤벼들지는 않았다. 헤라의 연민을 자극하기 위해 비 맞은 한 마리 애처로운 새.. 더보기
50년 동안의 약속 눈빛은 사진집을 내는 작고 오래된 출판사다. 원래 순한 사람들이 사고를 치면 꽤 집요하고 대책 없는 법이다. 책 만드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중년의 이규상 대표는 이런 축에 든다.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귀한 자료를 발굴해 책으로 엮어내는 우직함이 대단하다. 특히 다큐멘터리사진의 기록성에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눈빛이 북콘서트를 열었다. 11권의 사진집과 함께 눈빛작가선 10권을 내놓은 올 한 해의 결실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이날은 출판사 대표보다도 더 고집스러운 한 분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원로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 마침 이날은 선생의 대표작 사진집의 출판 기념회 자리이기도 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 미나마타시의 질소 공장에서 배출한 수은에 마을 주민들이 중독된 사.. 더보기
미친 사람을 그린다는 것? 낭만주의의 기본적인 정조는 ‘동경’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상상적인 것, 무한한 것, 먼 곳에 대한 동경을 모토로 한다. 현실감은 좀 떨어지고, 이국적인 것, 관능적인 것, 악마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탄생한 낭만주의는 천재와 광기의 예술가 개념을 만들었다. 통상 예술가를 생각할 때 과도한 감정, 자유와 방종, 괴팍함, 혼돈을 떠올린다면 낭만주의자로서의 예술가를 염두에 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의 먼 곳에 대한 사랑 혹은 동경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시간적으로는 중세와 바로크 시대, 공간적으로는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같은 근동과 인도와 중국, 일본 같은 극동에 대한 향수를 가진다. 낭만주의자들이 하렘의 여자들과 말을 탄 모로코인과 같은 근동지방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도 그 .. 더보기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선비 복장을 한 가수 싸이가 조선 팔도를 여행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긴 하나 시점은 다양하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의 시선에서 기록한 유적지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김일성광장 앞 인민군 행렬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의 손에는 대한제국이 만든 로켓이 들려있고, 그 옆에는 레이디 가가가 찬조 출연을 한다. 작품 한쪽에는 싸이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불렀을 법한 랩풍의 가사들이 적혀있다. 북한의 선전 문구 같기도 하고, 시조 한 소절 같기도 한 문장들은 시대 풍자와 한탄으로 가득하다. 사진가 이상현이 트렁크 갤러리에서 최근에 선보인 전시 제목은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얼핏 산만해 보이는 이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의외로 명료하다. 구한말 우리가 로켓을 가질 만큼 강력했다면 식민지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며.. 더보기
‘불란서 미니 2층집’과 ‘마당 깊은 집’ 건축역사에서 주거의 변천양식을 일반 건축처럼 구분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집은 마찬가지라는 것인데, 냉난방이나 자동화 시스템 등 현대기술의 덕택으로 주택의 편리함이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고 해도 건축의 본질인 공간의 구조에는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지역의 특수한 조건을 받아들여 지을 수밖에 없는 민간주택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예컨대 대략 9000년 전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었던 차탈휘위크의 집단 취락지 풍경은 지금의 터키 민간주거와도 비슷한 모습인 데다가, 놀랍게도 중국 허난지방에도 그 비슷한 형태의 주거가 있어 건강한 삶을 지금도 산다. 또한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우르에서는 부자와 빈자가 서로 섞여 산 것이 분명하다. 큰 집과 작은 집들이 흙벽들을.. 더보기
여성 화가로 산다는 것 19세기에 여자가 화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남성들과 대등하게 지적, 사회적, 정치적 경험 속에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안정을 모토로 하는 중산층 가문의 여자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자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대면하는 일이었다. 인상파 최초의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그랬다. 모리조는 집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화가에 입문했고, 재능에 있어서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예술과 결혼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갈등했다. 결혼을 거부할 만큼 화가로서의 인생을 살고자 했지만 작품은 아마추어의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즉 서사적 맥락과 극적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취약해 보였다. 모리조의 작품은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보기
팔 굽혀 펴기 이제 막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변화의 바람은 문화 예술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10년 사이 중국에는 수준급 사진 행사가 꽤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지메일은 연결이 쉽지 않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차단된 사회다. 통 크다는 얘기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행사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지만 한편으로는 내로라하는 작가나 기획자들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미심쩍은 검열이 존재한다. 작가들은 이 예민한 부분에 대해 어디까지 저항을 감행할까. 그리고 정부는 이런 작가들과 어떤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주고받을까. 이 대목은 중국 예술에 대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사진가 오지항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저항하는 경우다. 패션사진가이자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나체 퍼포먼스다. 그의 사진은 얼핏 보면 .. 더보기
미로와 미궁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포세이돈이 자기를 위한 제물로 쓰라고 보낸 흰 황소를 왕비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신에게 바치지 않았다. 이에 모욕을 느낀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을 벌주기 위해 파시파에 왕비가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왕비는 몸이 달아 명장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나무로 된 가짜 암소를 만들게 하여, 그 속에 몸을 감춘 채 황소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 후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났고, 미노스왕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게 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고, 해마다 아테네 출신의 처녀 총각 각 7명을 먹이로 주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제물로 바쳐질 희생자들에 끼어 크레타로 왔다.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 더보기
무리 쓰레기로 작업하기. 영국 사진가 맨디 바커를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녀는 태평양의 일명 거대 쓰레기지대에서 끌어올린 쓰레기를 하나하나 촬영한 뒤 포토샵으로 재배치해 전혀 다른 모양으로 조합해 낸다. 이 쓰레기들은 대개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다. 그녀의 작업은 얼핏 보면 몹시 아름답고 신기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바닷가에 버려진 우리 삶의 찌꺼기와 마주하는 모순된 시각 체험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이 버려진 사물에 대한 단상 또한 느낌을 달리한다. 예를 들면 북위 33.15도와 동경 151.15라는 태평양 바닷가 한가운데서 건져진 쓰레기 더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과 하와이 사이에 있는 그곳은 쓰나미를 겪은 후쿠시마의 해안가 쓰레기들.. 더보기
깊은 가을, 밤 그림과 함께 명상을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는 대중에겐 꽤 생소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개최된 ‘17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들’전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당대에 인기 없었던 화가는 아니다. 오히려 대단히 인정받았던 작가다. 실제로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를 지냈을 정도다. 라 투르의 그림에 특별히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바로크 미술의 주요 특징인 명암의 대비가 뚜렷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법)와 더불어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종교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의 그림은 단순한 명암법이 아닌 테네브리즘(Tenebrism)에 속한다. 이탈리아어로 테네브라(tenebra·어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