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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 트로피 출근길. 노아의 방주를 방불케 하는 지하철 안의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져서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커피나 휴지 같은 회사 비품을 마련하기 위해 결재를 받으러 쫓아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하루 종일 환자의 입속을 들여다보며 충치를 치료해 주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전쟁의 성격과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 식별할 수 있을 것인가. 사진가 최현진의 ‘트로피’는 이 전쟁 속 전리품과도 같은 사물들에 관한 작업이다. 그것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서랍이나 바구니 같은 사각의 틀 안에 담겨 있다. 네모난 사무실의 네모난 서류철처럼 틀에 박힌 형식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전리품이 보관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내.. 더보기
‘아를의 카페’라는 환상 서른세 살 늦은 나이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반 고흐.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나쳤다. 네덜란드에서 온 반 고흐가 파리에서 목격한 것은 인상주의자들이 더 귀하고 더 나은 목표에 쏟아야 할 열정으로 서로를 헐뜯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리스 조각 등 고전미술이 성취했던 고요하고 단순한 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사상을 가진 공동체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1888년, 그는 파리의 불협화음으로부터 벗어나 고갱과 같은 친구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이상적인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자신과는 매우 다른 기질을 가진 고갱을 초대해 공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기로 약속을 받아내고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남부도시 아를은 아주 적막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시골마을이었다. 오락거리라고는 찾아보기.. 더보기
먼 곳 그가 우리 나이 스무 살 즈음에 길을 떠날 때, 자신도 그 여행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몰랐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앙투안 브뤼는 이웃 나라들을 더 알고 싶다는 심정으로 프랑스부터 모로코까지의 히치하이킹을 택했다. 얻어 탄 차가 데려다 줄 수 있는 만큼의 이동은 그에게 커다란 상점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선물했다. 그때의 만남은 다시 수년이 흐른 뒤 앙투안에게 더 외진 곳에서 더 절제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 나서게 했다. 문명을 등진 채 살아가는 이들은 유럽 땅에서만도 꽤 많아서 그는 지난 3년 동안 유럽 전역을 떠돌며 15곳 이상을 방문했다. 전기도 없고, 아무런 편의 시설도 없는 고립된 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집을 짓고 식량을 구한다. 텃밭을 일구고 .. 더보기
토템적 식사 서양미술사에서 사투르누스(로마식 이름, 그리스 신화는 크로노스)는 큰 낫을 든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사투르누스는 그 낫으로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인간의 소중한 시간을 무자비하게 베어가는 늙은 거인으로 묘사되곤 했던 것. 이 시간의 노인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태초에 혼돈(카오스)에서 가이아(대지의 여신)가 생겨났고, 가이아는 자신의 아들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교접해서 사투르누스를 낳는다. 그러나 가이아가 100개의 팔을 가진 거인들과 외눈박이 거인들을 낳으려고 하자 우라노스가 그들을 땅속에 다시 밀어넣었다. 이런 우라노스의 폭압에 분개한 가이아는 아들 사투르누스를 사주해 우라노스를 낫으로 거세해 죽인다. 우라노스가 죽어가면서 남긴 말 한마디는 “너도 네 자식의.. 더보기
째르빼니 그것은 죽이기를 작정한 이주였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8만명에게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세간을 꾸릴 시간도 없이 가기 싫다고 우겨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화물칸 기차에 실려 1만5000리의 이주 길에 오른다. 춥고 배고프고 힘든 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 할당된 7만7000명 중에서 1만명 가까이가 넉 달의 이주 기간에 사망했다. 산 사람을 지키려면 기차 안에서 숨을 거둔 자식을, 부모를 기차 밖으로 떠밀어 바람 찬 허공에 장사를 지내야만 했다. 도착해서는 헛간이나 땅 웅덩이를 집 삼아 모질게 살아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김씨, 허씨, 유씨 등의 성을 쓴다. 대구의 인문사회연구소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기록 작업에 참여한 사진가 한금선이 그.. 더보기
바니타스와 미니멀 미술관 한구석에 사탕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것이 진짜 사탕일까 하고 의아해 하는 순간 사탕을 가져가도 좋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만 보니 관람객들이 사탕을 오물거리며 빨아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미술관 한쪽에 사탕이나 인쇄물을 배치하고 그것을 맘대로 가져가게 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마치 ‘작품을 만지지 말라’는 미술관의 권위에 은근히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토레스는 엄숙, 우아, 숭고의 상징인 미술관의 암묵적 금기들을 관객들 스스로 파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편견에 맞설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토레스의 작품은 관객이 손을 대는 순간,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작품에는 아주 사적인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1957년 쿠바 태생인 토레스는 3.. 더보기
소년 여자 애들이 좋아하는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소년이 있다. 드레스를 입고 립스틱도 바르고, 심지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 때조차도 총구에 분홍색 헤어 롤러를 꽂아 장식을 한다. 아이는 소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다만 계집아이다운 것들을 즐기고 수집한다. 사진가인 엄마의 눈에 소년은 지금 자신의 세상을 훨씬 폭넓게 열어둔 채 즐기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 ‘소녀는 분홍색, 소년은 파란색’이라는 이분법은 천성이 아니라 어른들이 학습시킨 취향일 뿐이다. 지난 7월 작지만 의미심장한 재단이 이 소년에 관한 작업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이 재단의 이름은 ‘프라이드 사진상’.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적소수자들이 있음을 사진으로 알리기 위해 생겨난 모임이다. .. 더보기
신과 맞짱 뜰 수 있는 예술 어느 날 아테나는 자기가 만들어 불던 아울로스(aulos: 일종의 피리)를 천궁 아래 낭떠러지로 던져 버린다. 피리를 불면 입이 불룩해지는 것이 여신으로서 여간 민망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강의 정령이자 반인반수인 마르시아스가 여신이 버린 피리를 줍는다. 입에 대고 불어보니 솔솔 소리가 나는 것이 여간 청명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피리 부는 재미에 푹 빠진 마르시아스는 실력이 급진전을 보이자, 아폴론의 리라 연주보다 자신의 아울로스 연주가 더 낫다고 떠들고 다닌다. 화가 난 아폴론은 미다스왕을 포함한 인간들을 모아놓고 연주대결을 하자고 한다. 벌칙은 지는 자가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는 것! 연주가 끝나고 모든 심판들은 아폴론의 리라 연주에 손을 들어준다. 단지 미다스왕, 그러니까 만지는 것마다 .. 더보기
역사적 현재 사진가 안성석의 ‘역사적 현재’는 과거를 현재 속에 옴니버스식으로 불러오는 작업이다. 촬영은 순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진다. 역사적 장소를 찾아가 그 앞에 스크린을 설치한 뒤 같은 장소의 옛날 사진을 투사한다. 이렇게 해서 첨성대도 남대문도 그의 작업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한 몸으로 존재한다. 마치 영매가 자신의 몸을 통해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듯, 안성석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과거를 현재 속으로 끄집어낸다. 아니면 현재가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의 장소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만난다는 것은 생각 이상의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흡사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첨성대 아래로는 답사를 나온 조선시대의 청년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 더보기
부채에 담긴 속 깊은 뜻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에 작자 미상으로 전하는 노래다. 우리 선조들은 부채를 여름철 선물로 보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청정하게 하고, 재앙을 몰고 오는 액귀를 몰아내는 역할을 했다. 서양미술 속에서 부채는 특별히 로코코 시대에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로코코 패션의 완성은 하이힐, 숄, 부채, 퐁탕주(가체), 모자, 액세서리 등이다. 이처럼 패션이 파편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에로티시즘이 정교화되었다는 의미다. 로코코는 뭐니 뭐니 해도 유혹과 연애의 시대가 아닌가! 특히 부채는 사교계와 시민계급의 여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장신구였다. 부채를 솜씨 있게 다.. 더보기
앨범 그는 브라질의 가난한 간판장이였다. 난생처음 양복을 빼 입고 행사에 가던 길에 패싸움을 목격했는데 말리려다가 그만 다리에 총을 맞았다. 그는 가해자가 제시한 합의금을 들고 덜컥 뉴욕행을 택했다. 마침 키치의 제왕 제프 쿤스가 미국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던 1980년대 초였다. 무엇으로든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면, 자신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문제적 인간 빅 뮤니츠는 그렇게 해서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사진가라는 수식을 다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뮤니츠의 특징은 초콜릿, 실, 설탕, 쓰레기 등 일상의 흔한 재료를 사용해 명화나 인물들을 자기 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몇 년 전에는 브라질 쓰레기장에서 사들인 폐기물들로 운동장만한 작품들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 더보기
번개, 번뜩이는 영감 장마철의 하이라이트는 천둥과 번개다. 사람들은 자연의 이 현상을 흥분보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본다. 마치 신의 분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천둥 번개를 흥미롭게 바라본 예술가가 있다. 미국의 대지 미술가 월터 드 마리아! 그는 번개를 하늘이 그려내는 멋진 드로잉으로 격상시켰다. 그것도 매번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며, 절대로 소유 불가능한 작품으로! 1970년대 월터 드 마리아는 뉴멕시코주의 광활한 사막 들판에 길이 1.6㎞, 폭 1㎞에 7m 높이의 스테인리스 스틸 봉 400개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사각형 모양으로 설치하였다. 이 피뢰침은 의도적으로 번개를 유도하는 것으로 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번개의 섬광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뉴멕시코 디아 뉴욕미술센터의 후원 아래 영구적으로 전시 보존되고 .. 더보기
플랜테이션 백인들을 위한 식민지풍의 저택. 그 주변으로는 광활한 농장이 펼쳐져 있다. 역시나 햇볕은 따갑다. 식민지 시절, 그 뜨거움 아래서 자라나는 농작물들에 대한 욕망과 그 뜨거움에 익숙한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열기는 아마 더 강렬했으리라. 작품 속에서 시대와 장소를 짐작할 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켄터키인지, 쿠바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탕수수 농장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곳이 어디이건 플랜테이션 개발에 혈안이 됐던 백인 지배 아래의 원주민들의 상황은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은 직설적으로 이 모든 것을 얘기하는 대신 궁금증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흑인, 태양열 아래서 무심하게 자라는 식물들 혹은 그 위로 피워 오르는 화염처럼 뭔가 사.. 더보기
해변의 칠리다 “예술은 자연을 형이상학적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니체의 이 말을 십분 이해하게 하는 예술가가 있다. 스페인의 조각가 에두아르도 칠리다(1924-2002). 내 서재에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 있는 복사된 칠리다의 작품사진 몇 점. 나는 자주 나에게 부과된 예술가의 작품을 두고두고 좀 오래 지켜보는 편이다. 대부분 그쪽에서 말을 먼저 걸어주기를 기다리면서, 조금은 갈망하는 시선을 보낸다. 스페인 바스크 해안가에는 칠리다의 ‘바람의 빗 Wind Comb’(1977년)이 서 있다. 서로 다른 위치에 세 점의 조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바위에서 솟아나온 촉수 같기도 하고, 바닷물을 삼키는 혀 같기도 하며, 폭풍의 잔인함에 묵직하게 대응하고 있는 수호신 같기도 하다. 돌과 쇠의 만남 혹은 접촉! 어쩌면 그것은 태곳.. 더보기
애송이의 여행 이 사진을 처음 보면 두 번 놀란다. 우선 작가가 직접 접은 사진 속 종이들이 너무 작아서 놀라고, 그렇게 작은데도 기관을 갖춘 생명체처럼 정교해서 또 한 번 놀란다. 하물며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 크기도 작다. 큼지막하고 화려한 작품들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전시장에 걸린 모노톤의 자그마한 사진들은 애초 벽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잔잔한 존재감만을 발한다. 그래서 오히려 액자 가까이 고개를 바짝 디밀어야 하고, 숨은 그림 찾듯 작은 대상들 앞에서 더 긴 시간을 머물러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의 둔한 감각이 깨어나는 사이, 책장의 펄럭임을 타고 활자 속에서 튀어나온 종이비행기들은 사진 밖으로 가벼운 비상을 시도한다. 순간 종이비행기가 일으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를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사진가 권도.. 더보기
[유경희의 아트살롱]‘낙원추방’과 요절한 화가 마사치오 쫓겨난 이들의 비참한 심경을 이렇게도 침통하게 표현한 그림이 있을까? 창세기 3장 8-24절에 따르면, 하느님은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인간에게 판결을 내린다.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과 남편에의 종속을, 남자에게는 노동의 형벌을 명한다. 하느님은 천사인 케루빔에게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일을 맡겼고, 케루빔은 불칼을 들고 그들을 쫓아내며 성스러운 장소를 지키고 있다. 1425년 마사치오는 피렌체의 실크 상인 브란카치 가문의 가족 예배당을 위해 ‘낙원추방’을 그렸다.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슬퍼하는 아담과 허공을 응시하며 넋이 나간 이브의 표정은 진정 압권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브의 포즈는 마치 비너스가 취하는 ‘비너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까지 하다. 비너스와 이브가.. 더보기
점들 정교하고 화려하게 정렬한 이 점들의 정체는 과연 뭘까. 눈이나 볼에 바르는 색조 화장품 내지는 디자이너를 위한 컬러 차트, 아니면 디지털 이미지를 확대한 픽셀들? 답은 조금 더 시시하다. 바로 문구점에서 파는 땡땡이 스티커. 사진가 황규태는 이 스티커를 근접 촬영한 뒤 컴퓨터로 색을 조작했다. 그러나 3m 크기의 프린트로 보는 그의 점들은 손바닥만한 스티커와는 달리 도발적이다. 가볍지만 싼 티 나지 않고,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칠순을 넘긴 황규태는 여전히 파격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진계의 이단아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던 1960년대, 팝아트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디지털이 나오기 훨씬 전인 그때부터 필름의 어느 부분만을 확대해서 재촬영하거나 필름을.. 더보기
줄리어스 시저와 로마 초상조각 7월이다. 줄라이(July)는 줄리어스 시저(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희대의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따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브루투스, 너마저”와 같은 간단명료한 언어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낸 정치예술가 줄리어스 시저! 영어단어 시저(Caesar)는 독일에서는 카이저(kaiser), 러시아에서는 차르(czar)라고 하며, 모두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황제 중에서도 실권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독재적인 전제군주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결국 절대적인 힘을 가진 황제를 뜻하는 시저라는 단어가 줄리어스 시저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실제로 줄리어스 시저는 황제가 아니었다. 황제나 왕은 아니었으나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한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가,.. 더보기
코피노 흙먼지가 날리는 버스 창가에 앉은 여자도, 소녀도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이 아이는 코피노다. 코피노는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킨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유학이나 여행, 사업차 필리핀에 머물던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뒤, 아빠에게서 버려진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낙태가 불법이다. 소녀가 배 속에 있을 때 이미 아빠는 도망쳐 버린 상태였다. 엄마는 뒷감당이 두려워 다양한 방법으로 사산을 시도했다. 계단을 심하게 오르내리거나 배를 심하게 치는 것은 물론이고 독한 술을 마셨다. 그 충격은 아이의 생명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으나 뇌 기능의 상당 부분을 마비시켰다. 심지어 친엄마마저 혼자서는 앉지도, 서지도, 먹지도 못하는 이 아이를 떠나버렸.. 더보기
마그리트의 거대한 나날들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수만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한들 무슨 상관있겠는가! 작품은 하나의 생명체이고, 그림은 그것을 그린 화가와는 무관하게 자기만의 운명이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림으로 철학을 한다고 여겼던 르네 마그리트의 ‘거대한 나날들’ 역시 내게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림 속 여성은 거대한 공포상태에 빠져 있고, 남자를 힘껏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그 남자는 몸의 일부를 점령해버렸다. 마그리트는 이 작품이 한 여인을 강간하려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여인을 사로잡은 공포를 일종의 시각적 속임수를 통해 포착하려 했다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가운데서도 마그리트의 그림만큼 비밀스러운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지속적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