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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삶을 춤추어라! 마티스는 춤이 자기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춤은 그의 인생의 활기였다. 그런 그에게 1909년 러시아 최고의 미술품 애호가로 유명했던 섬유왕 세르게이 슈추킨(Sergei Ivanovich Shchukin)이 자신의 저택 계단 벽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한다. 바로 전년 를 사들였던 슈추킨은 자신이 구입한 그림에 만족하고, 춤 그림을 그려보라고 제안했던 것이다. 마티스는 슈추킨의 찬사와 격려에 고무되어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영감에 휩싸여 유화 스케치인 을 완성했다. 러시아 발레단의 춤, 카탈류냐 해변에서 어부들의 춤, ‘파랑돌’이라는 프로방스 지방의 춤 등에서 영감을 받은 마티스는 발랄함과 유례없는 활기, 과단성이 결합되어 있는 그림을 그렸다. 이어 그린 는 더욱 격정적인 색조와 원초적이며 강렬한 춤의 .. 더보기
침묵과 낭만 부산만큼 여행의 정석이 난무하는 곳도 드물다. 다들 부산하면 조용필 노랫말 속의 동백섬이나 해운대의 영화제를 자동으로 연결시킨다. 간 김에 자갈치시장에 들르거나 ‘부산오뎅’을 먹는 건 빠뜨릴 수 없는 행사처럼 얘기한다. 이제는 여기에 유행처럼 국제시장까지 한몫 거들고 있다. 이런 식의 답사 코스는 한편으로는 뻔하지만, 유독 사람들이 식지 않고 쉬지 않고 부산에서 얘깃거리를 만들어낸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뎅은 부산 것이 맛있고, 쌀쌀한 날 부산에서 먹는다면 더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굳이 꽃이 펴 있지 않더라도 동백섬에서 갈매기가 슬피 우는 소리를 듣는 일 또한 조용필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상으로 운치 있다. 사진가 이갑철이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부산 사진에는 왜 이.. 더보기
아몬드 나뭇가지에 핀 꿈 아몬드 꽃은 매화처럼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이 작품은 1890년 반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의 불화 끝에 귀를 자르고, 자발적으로 들어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랑하는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자,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는 선물로 주려고 그린 것. 그것도 파란 눈을 가진, 자기와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조카를 위해서 말이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꽃처럼 조카가 고통을 잘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자살한 해의 마지막 봄에 그려진 그림이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완성한 후 몸져누워 몇 주간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기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만 같다. 삼촌도 .. 더보기
유령 도시 얼마 전 익숙한 거리의 가게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를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포털사이트에서 거리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월하게 가게 이름을 찾고 나자, 분명 이제는 없어져 버린 옆 가게도 함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아주 잠시, 뭔가 비현실적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정작 몸은 컴퓨터 앞에 있는데 실제로는 과거로 돌아가 그 거리에 서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 영상이 과거에 촬영된 것이 아니라 ‘실’시간 이미지라고 느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 그 거리에 서 있다고 착각할 만큼 눈앞에 보이는 화면을 더 믿었던 셈이다. 어쩌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시간으로 거리가 스캔되고 있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있으면서도 그곳을 보.. 더보기
아주 안타깝고 아까운, 한 여성화가 너무 일찍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여성화가가 있었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20세기 최고의 화가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당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도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한 존재였다. 1898년 독일 브레멘 근교의 예술인 공동체 마을 보르프스베데에 정착한 모더존은 그곳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미술가들을 만나고 우정을 쌓는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그의 부인이 된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난 곳도 그곳이다. 모더존은 동료 화가였던 오토 모더존과 결혼했고, 짧은 공동작업 시간도 가지지만, 결혼과 작업에 회의를 느껴 파리로 떠난다. 표현에 있어 형태를 최대한 단순화하고자 했던 그가 선택한 파리는 예술적 영감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 더보기
가족 앨범 뭐니 뭐니 해도 사진의 탄생이 우리에게 선물한 최고는 가족사진이다. 물론 대형 카메라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버텨야 간신히 얻을 수 있던 초기의 비싼 사진관 사진과, 누르기만 하면 나머지는 카메라가 다 알아서 해주는 ‘똑딱이’ 카메라 시대의 가족사진은 그 위상도 성격도 많이 다르다. 필름 카메라가 중산층의 필수품이던 시절을 거쳐 스마트폰 시대 우리의 모든 기념일은 이제 낱낱이 기록된다. 그러므로 가족사진은 개인의 작은 역사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양식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거대한 시각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비록 누구나 찍기에 너무 흔하고 세속적인 사진으로 치부되지만, 사진가들도 가족이라는 주제를 많이 다룬다. 그러나 사진가가 찍은 가족사진이 사진관 사진만큼이나 기술적으로 더 아름답고 완벽할 거라.. 더보기
동네를 잃어버린 주소 오래전의 일인데, 외국유학을 갓 다녀온 한 조각가의 푸념을 듣게 되었다. 청계천 철물상에 가서 직각으로 된 자를 만들어 달랬더니 어느 한 곳도 90도 정각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슬며시 외국과 비교하며 직각도 만들지 못하는 한국의 장인정신 부재를 트집했다. 그렇게 비난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가구들을 보면 자로 잰 듯한 정확함이 없는 게 사실이다. 어딘가 틀어지고 어딘가 모자라는 불완전한 상태를 두고 한국인이 가진 해학이며 미학이라고 학술적으로 논문을 쓰며 해석까지 해왔다. 건축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옛 건축에서 궁궐이나 사찰의 주된 건물을 얼핏 보면 좌우대칭의 당당한 입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측으로 따지면 실제는 정확한 대칭이 아닌 게 대부분이다. 이를 두고, 한 치의 틀림도 없는.. 더보기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전도서 1장 1절).” 라틴어 ‘바니타스(vanitas·영어로는 vanity)’는 허무, 무상, 허영을 뜻한다. 바니타스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거의 모든 정물화의 기본 주제다. 그중에서도 해골이 등장하는 정물화를 특별히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부른다. 인생이 허무한 건 인간이 죽음 앞에 무력하기 때문이고, 해골만큼 죽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티프는 없기 때문이다. 초기 바니타스 정물의 대표작인 바르텔 브륀 1세가 그린 ‘제인-로이즈 티시에르의 초상화 뒤편에 그려진 바니타스 정물’에는 두개골이 벽감(니치)에 놓여있다. 두개골은 이미 턱뼈가 빠져 있는데, 인체가 점차 해체, 소멸되어 가는 .. 더보기
소소산수 겨우내 이 사진을 책장에 걸쳐 두고 함께 봄을 기다렸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정말 봄이다. 오히려 눈 내리는 겨울은 참을 만한데, 요즘처럼 사방에서 봄 기운이 보일락 말락하면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낸다. 한껏 연둣빛이 오른 새순도 보고 싶고, 제멋대로 흐드러지는 진달래도 그리워진다. 김진호가 찍은 사진 속에서는 그런 봄이 이제 막 오고 있다. 콘크리트 담장 아래로는 진분홍 꽃이 줄지어 피었다. 실제로 가보면 촌스러울 새파란 지붕도 진분홍과 짝을 이루니 꽤 개성있어 보인다. 길 건너 논밭은 빈혈을 앓듯 아직 푸석한 걸로 보아 꽤 이른 봄인 듯한데, 유독 파랑 지붕 집 뒤편만 꽃놀이가 한창이다. 산수유며 매화, 수선화까지가 한꺼번에 유난스럽기는 어려운 일, 어쩌면 부지런한 집주인이 장에서 구해다 꾸며놓은 .. 더보기
상처 입은 삶의 포에지 실연을 한 후 몽유병 환자처럼 어떤 의지도 없이 미술관에 갔다. 그때 내 심경의 이마주는 길고 가느다란 자코메티의 걷고 있는 인물상과 접촉했다.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절망을 안고 찾아가기엔 미술관만 한 곳이 없다. 거기엔 나보다 더 예민하고 민감하고 처절하게 삶과 사랑에 배반당한 존재들의 환대(?)가 있으니까.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기다랗고 야위고, 날카롭고 납작하고, 의식 없이 출몰하는 조각으로 파리의 미술가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이후 뉴욕에서 열린 두 차례의 전람회(1948, 1950년)와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장 폴 사르트르가 쓴 작품론으로 미국에서 더 명성을 떨쳤다. 절친이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혹은 유섭 카쉬가 찍은 자코메티의 얼굴은 그대로 그의 작품이다. 꾸미지 .. 더보기
혼종의 탄생 도대체 이 생명체의 정체를 뭐라 불러야 할까. 다리가 여덟 달린 고릴라 아니면 고릴라의 얼굴을 한 문어. 어쩌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처럼 문어를 통째로 잡아먹고 있는 고릴라인지도 모른다. 이 괴생명체는 아직도 진화를 멈추지 않았는지 머리 위로는 더듬이가 솟아나고 몸통에는 날개까지 달고 있다. 물과 뭍, 하늘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존재는 과연 슈퍼 생명체인가 아니면 그 어느 한 부분도 온전치 않은 끔찍한 기형 생명체에 불과한 것일까. 조잡한 싸구려 모형을 재조립해 탄생시킨 이미지 앞에서 심각한 척 이런 식의 궁금증을 갖는 일이 어쩌면 과대망상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켄타우로스나 인어공주 같은 수많은 전설 속 반인반수는 지금도 여전히 동화와 공상과학 세계를 통해 변형된 캐릭터로 재탄.. 더보기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베이컨은 항상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살아있다는 것을 정육점의 고기와 같이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통받는 인간은 동물이고, 고통받는 동물은 인간”이라고 했던 베이컨은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모자라 실제 소 갈빗대를 들고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스스로 잔혹한 초상이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루시앙 프로이트(프로이트의 손자)와 더불어 영국 구상미술의 독보적 존재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동명인 근대경험론 철학의 선구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후손이다.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을 가진 그가 엄청난 동물적 영리함과 감각적 지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조상의 유전자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베이컨은 엄마 옷을 입고 화장을 하다가 아버지한테 쫓겨나 속기사, .. 더보기
수정아파트 수정아파트는 작고 낡은 아파트다. 도시개발 바람을 타던 1969년 부산의 대표적인 서민 아파트로 들어섰다. 세월이 흘러 연탄보일러가 도시가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복도 끝 공용을 써야 하고 부엌은 어정쩡한 입식 구조를 하고 있다. 이제 이런 구식의 원조 원룸에는 대개가 아파트만큼이나 나이가 꽉 찬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남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내 집 살이를 택한 어르신들이나 싼 세를 찾아 중심부에서 밀려난 이들이 둥지를 튼다. 윤창수는 2011년부터 사진기를 들고 이 열일곱 동짜리 아파트를 드나들었다. 아파트와 같은 해에 태어나 이십대의 청춘을 그곳에 부렸던 인연이 처음에는 그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억이 버무려진 긴 오후의 우수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다 정이 든 할머니가.. 더보기
잃어버린 미소 ‘아르카익 스마일’ 내 서재에 걸려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언제나 질문하게 한다. 도대체 저 묘연한 미소의 근원과 정체는 무엇인가? 물론 그 미소는 학구적으로는 해석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 때로는 문제를 풀지 않는 편이 옳다.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기원전 2세기쯤 알렉산더 대왕의 간다라 정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을 비롯해 석굴암의 본존불,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는 고대 그리스의 아르카익 스마일과 닮아있다. 분명 최초의 불상들은 그리스 조각들처럼 서구인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헤어스타일과 의상도 그리스식이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한반도까지 전파되었으리라. 고대 그리스 미술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는데, 기하학적 시기(B.C. 1100~800년), 아르카익기(B.C. 600~480년).. 더보기
이스탄불의 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이조차도 카르티에 브레송은 기억할 만큼 그는 이제 국내에서도 두꺼운 관객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라 귈레르 전시 또한 놓쳐서는 안된다. 비록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아라 귈레르는 터키를 대표하는 국민 사진가다. 자신을 매그넘 회원으로 추천해 준 20년 터울의 카르티에 브레송과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이기도 하다. 아라 귈레르는 포토저널리스트로서 세상 여기저기를 누비며 무려 200만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스탄불의 눈’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대표작은 단연코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도시 이스탄불의 풍경이다. 아라 귈레르는 1928년에 태어나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한 19.. 더보기
마스터플랜의 망령 1955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세워진 ‘프루이트이고’라는 2870가구수의 주거단지는 세워지기 이전부터 건축매체로부터 최고의 아파트로 칭송받았다. 이 단지는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미노루 야마자키(그는 2001년 테러로 무너진 뉴욕 무역센터도 설계했다)의 설계로, 그 당시 세계 건축계를 이끈 르 코르뷔제와 국제건축가회의(CIAM)가 주창한 신도시에 대한 마스터플랜 강령을 충실히 추종하여 ‘미래 도시의 모범’으로도 불렸다. 합리와 이성을 절대가치로 믿는 모더니즘을 시대정신으로 가진 그 강령은, 7만여평의 땅 위에 11층의 33개동의 아파트를 균일하게 배치시키며 흑인과 백인 가구로 나눈 후 모든 공간을 기능과 효율로 재단하여 분류하고 계급화시켰다. 보랏빛 꿈을 약속한 마스터플랜은 마치 전지전능이었다. 우리의 미.. 더보기
꽃보다 어리석음 초현실주의자들이 흠모한 두 사람이 있다. 프로이트와 보슈다. 당시 지식인과 예술가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프로이트는 동시대 사람이었지만, 히에로니무스 보슈는 500년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북구 르네상스의 거장이었다. 인간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악몽처럼 그린 보슈는 여행을 전혀 하지 않았고, 집 밖에 나오는 일도 없었다. 거의 은둔자였던 보슈는 마치 악마와 교통하듯이 지옥의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대표작인 ‘쾌락의 정원’과 ‘최후의 심판’은 그가 가진 상상의 세계가 얼마나 엽기적이고 불가사의하고 세기말적인지 보여준다. 중세 말은 잦은 천재지변과 전염병, 전쟁, 반란 등 세기말적인 징후가 가득한 시기였다. 이 시기를 통과한 보슈는 세상은 진정한 안식처가 아니라 험난한 순례를 거쳐야만 하는.. 더보기
미래고고학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 미래에 대한 온갖 예측이 난무한다. 분명한 건 우리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숱한 직업, 음식, 복장, 풍경, 날씨 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언어와 인종까지도. 그 소멸한 대상의 상당수는 멀고 가까운 미래에 어쩌면 박물관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라진 문화를 유물로 만들 때 힘의 논리도 작용할까. 과거 아프리카와 이집트 문명을 기꺼이 자신들의 안방으로 들여온 서구처럼. 더 극단적으로는 누군가는 그 박물관 안에서 전통을 재현한다는 명분으로 살아가게 될까. 파리에 살고 있는 이대성의 ‘미래고고학’은 이처럼 조금은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몽골 풍경이다. 하필 왜 몽골일까. 급속한 사막화와 도시화로 유목의 전통이 거의 멈춰버린 이곳이야말로 인류.. 더보기
나는 베일을 사랑해요! 어쩌면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말한 것에 의해서보다는 침묵한 것에 의해서 그를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마그리트는 좀체 유년 시절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는 추억들도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매우 환상적인 것들로 채워나갔다. 이처럼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그의 기억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베일을 씌운 그림들이 그렇다. 마그리트의 ‘베일’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렇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미지로부터 왔다는 것. 우울증이었던 어머니가 야밤에 몸을 강에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13살의 마그리트가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잠옷으로 가려진 얼굴과 신발을 거꾸로 신은 몸이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택한 죽음을 보지 않으려고 .. 더보기
시인과 사진가의 우정 일본에서 소포가 왔다. 처음 보는 이름이다. 겉봉을 열자 보자기가 나온다. 소탈한 무명천 보자기인데 마치 이제 막 묶어서 보낸 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다. 보자기 안에는 원고지에 붓펜으로 쓴 편지 한 통과 흑백 사진들이 담겨 있다. 빼어난 필체의 편지는 곡진하고, 프린트는 한 점 한 점 정교하다. 혼자였는데도 보자기를 풀 때부터 마지막 사진을 덮을 때까지 예를 갖추듯 조심스러웠다. 보낸 이와 사진 속 주인공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12년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 권철은 일본 한센병 시인 텟짱의 사연을 이렇듯 정성스럽게 전해왔다. 텟짱의 본명은 사쿠라이 데쓰오. 열여덟 살 때인 1941년 한센병 요양원에 강제 수용된 뒤 2011년 생을 등지고서야 고향에 묻힌 한센병 회복자. 요양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