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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숨겨놓은 연인 라파엘로는 서른일곱에 미혼으로 죽었다. 당대 인기화가로 교황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교황의 주선으로 만난 질녀를 마다하고 짧은 생애 동안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라 포르나리나’라는 여자다. ‘라 포르나리나’는 ‘제빵사의 딸’이라는 뜻으로, 그녀의 본명은 시에나 출신의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다. 라파엘이 로마에서 일하던 12년 동안 그의 정부로 지낸 여자다. 르네상스 미술사가 G 바사리에 따르면 “라파엘로의 성품은 너무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서 짐승들까지도 그를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여리고 섬세한 외모의 소유자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미소년 같은 품새는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꽤나 자극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가 .. 더보기
타인의 땅 이갑철, 신촌, 1987 흔들려서 흐릿하지만, 썩 기분 좋은 장면이 아님을 짐작할 수는 있다. 경찰이 젊은이를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저만치로는 길을 건너려는 행인 하나가 서 있는데 웬일인지 거리는 텅 비었다. 그 뒤로 젊은이 하나가 막 모퉁이를 돌아서려 하고 있다. 멀리서 뒷모습만을 봐서는 그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어중간한 바지통과 머리길이로만 짐작하건대 요즘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림자가 긴 것으로 보아 느린 오후였을 것이다. 신호등도, 담벼락도 모든 반듯한 것들이 기울어진 채로 서 있는 장소는 가 본 듯도 한데 낯설다. 젊은이들이 보이니 대학가일까. 분명한 것은 사진이 계속해서 강박을 선물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제대.. 더보기
사랑의 절정이란 이런 것? 수년 전 루브르미술관에서 목격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날 놀라게 했다. 몇 번째 루브르를 방문했지만 한번도 이 반쯤만 엎드려 누운 여자(?)의 실체를 제대로 목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너스인 줄만 알았던 이 여자는 사실 헤르마프로디토스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남녀추니, 어지자지, 즉 양성체의 인간이다.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제우스가 태어난 프리기아의 이다산에서 님프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란 그는 15세에 세상 구경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남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살마키스라는 호수의 요정이 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렸다. 살마키스는 그를 소문난 미소년인 에로스로 착각하고 열렬히 사랑고백을 한다. 자기를 애인으로 삼아달라고, 그렇게만.. 더보기
책가도 임수식, 책가도 048, 2013 책은 그냥 사물이 아니다. 글쓴이의 목소리가 종이에 스며든 살아있는 유기체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가 누렇게 바스러지고, 군데군데 너덜거리면서 나이든 티를 드러내는 꼴도 영락없이 늙어가는 사람 몸 같다. 이러한 책의 운명은 누구를 임자로 만나 어떤 책과 무리를 짓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정작 책을 한자리에 모은 건 사람이지만, 이렇게 모인 책들의 묶음은 거꾸로 책 주인의 얼굴이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서가를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품은 세계와 만난다는 뜻이다. 서가와 문방사우 등을 그린 조선시대 그림에서 착안한 임수식의 ‘책가도’ 연작은 평범한 이들은 물론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책장까지를 아우른다. 그러나 작품은 책장 임자의 이름을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책의 제목, .. 더보기
이런 결혼식 어때요? 흥겹고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는 결혼식 장면이다. 허름한 곡식창고에서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난한 농민의 혼례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풍속을 흥미롭게 그려낸 피테르 브뤼헬은 종종 농부로 변장을 하고 동네 행사에 몰래 참여하곤 했다. 테이블을 사선으로 배치하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을 크게 그려 오른쪽을 강조하는 구성방법은 당시로선 매우 독특한 것이다. 카메라가 없던 시기에 마치 사진 스냅 샷과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정작 혼례식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신부는 이 잔치와 고립되어 있다. 초록색 휘장 아래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쓴 신부는 먹고 마시는 하객들 사이에서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랑 비슷한 인물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결혼식 저녁까지.. 더보기
낡은 방 김지연, 낡은방, 진안, 2011 방은 좁고 벽은 울퉁불퉁하다. 벽돌 써서 번듯하게 올린 집이 아니라면, 손으로 직접 지어낸 시골 흙집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이 집도 처음에야 그럴싸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들보는 조금씩 틀어지고, 흙벽은 말라 군데군데 파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이든 티를 내고야 만다. 그 작은 집 조그만 방 안에는 집보다도 더 나이가 든 부모님이 산다. 그나마 한쪽을 먼저 여읜 경우가 많아서 방문 위 우두커니 걸린 사진으로만 함께 머물 뿐이다. 아마도 영정이었을 흑백사진 곁으로는 회갑연쯤에 찍은 기념사진이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다. 나란히 놓인 두 사진 아래로는 그 방 안에서의 삶이 훌륭했음을 보증하듯 플라스틱 카네이션들이 선연하게 피어 있다. 그러나 시들지 않는 꽃만큼이나 유통기한이.. 더보기
뒷모습이 아름다운 남자 회화에서 뒷모습은 꽤 매력적인 소재다.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 창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뒷모습은 아련하게 매혹적인 것이다. 화가들은 왜 뒷모습을 그렸을까? 뒷모습만을 단독적으로 그리는 것이 등장하려면 19세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뒷모습이 그려졌던 거다. 낭만주의의 가장 기본적 정조는 동경이다. 동경은 무한에 대한 사랑, 즉 먼 곳을 사랑하는 것이다. 먼 곳에 대한 동경은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으로 나뉜다. 19세기적 관점으로 볼 때, 시간적인 먼 곳은 고대와 중세시대이며, 공간적인 먼 곳은 근동인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혹은 극동인 인도와 중국, 일본과 같은 곳이다. 이런 낯선 것, 이국적인 것, 그로테스크한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낭만주의의 모토인 것이.. 더보기
짓거나 혹은 무너뜨리거나 정지현, 철거 현장 06 외부, 2013 허무하게도 집이 가지고 있는 그럴싸한 의미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한 덩어리 콘크리트다. 더 정확하게는 투자 상품처럼 평당 가격에 집착하게 만드는 아파트 거래의 현실이 집을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특이하게도 정지현은 이 콘크리트 구조물에 집착하는 작가다. 그는 굳이 집의 의미나 장소의 상실을 들먹이는 것이 의미 없다는 듯, 우리가 살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집의 은밀한 내부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제 막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의 지하공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거나 쇠파이프가 널브러진 이 차가운 공간은 필시 지하 기계실이나 주차장으로 변모하겠지만, 우리가 늘 보던 아파트 광고의 현란함과는 거리가.. 더보기
눈먼 소녀의 센스 존 에버렛 밀레이는 영국이 자랑하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영국의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진보적 예술가 단체로 르네상스 전성기 화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미술운동) 화가다. 이 그림은 1854년 화가가 영국의 서섹스의 윈첼시 지방 근처에 머무는 동안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다. 근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중시 사상을 가졌던 라파엘 전파의 거장답게 이 그림은 산업혁명으로 동공화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화려한 색채와 치밀한 세부 묘사와 더불어 시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고아로 보이는 두 소녀가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남루한 옷차림과 무릎 위의 손풍금으로 미루어 거리의 악사로 생계를 .. 더보기
빛에 빚지다 정택용, 기륭전자 앞, 2006 사진은 빛 없이 태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사진가들은 빛에 빚을 지고 산다. 그러나 빚을 지는 게 어디 빛에게뿐일까. 숨막히는 풍광이든 가슴 저린 삶의 현장이든 사진가는 빛이 비춰주는 모든 대상에게도 마음의 빚을 진다. 올해로 다섯 번째인 ‘빛에 빚지다’라는 이름의 달력은 이 빚진 마음에서 시작했다. 계기는 용산 참사였다. 현장을 드나들던 사진가들이 달력을 만들겠다고 결심하자 얼굴도 모르던 수많은 이들이 선뜻 선구매를 해줬다. 그들의 이름도 달력에 함께 새겨졌다. 이렇게 실제작비용을 뺀 모든 판매 금액은 용산을 거쳐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등에 전해졌다. 그들에게 제일 큰 위안이 되었던 건, 후원 금액보다도 달력에 새겨진 이름이었다. 이 달력은 ‘최소한의 변화.. 더보기
몬드리안의 ‘데 스틸-스타일’ 몬드리안은 자연을 혐오했다. 칸딘스키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창밖의 나무가 보기 싫다고 창을 등지고 앉을 정도였다. 그는 자연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는데, 그것이 너무 변덕스럽고 무질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몬드리안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초토화되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었으니, 자연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상향에 관한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네덜란드의 한 소도시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은 종교적 환상에 빠져 있던 아버지와 자주 아픈 어머니 사이에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 서른 살쯤 파리에 정착하게 된 그는 신지학(Theosophy·보통의 신앙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한 본질에 관한 지식을 신비한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로 알아가고자 하는 종교철학)이라는 학문에 .. 더보기
핑크와 블루 산부인과에서는 태아의 성감별이 불법임을 감안해 이런 흔한 편법을 사용한다. “분홍색으로 준비하셔야겠네요.” 간혹 ‘의식’이 있는 예비 부모들은 이 말을 들음과 동시에 파랑색 출산 준비물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겠다는 청개구리식 몸부림이다. 그러나 생애 첫 배냇저고리로 파랑색을 걸쳤던 여자아이라 하더라도 분홍색 물건을 고집하는 날은 기필코 오고야 만다. 이건 부모의 의식적인 노력조차도 색의 코드화 앞에서는 실패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아이가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일까. 혹은 원래 여자는 분홍을 좋아한다는 이분법 논리를 생물학적 특징으로 수긍하라는 뜻일까. 윤정미의 ‘핑크와 블루’ 연작은 이 아리송함에 대한 작업이다. 사진 속에서 아.. 더보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키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진 그림 중 하나는 클림트의 ‘키스’다.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가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이 ‘키스’가 지닌 의미를 은밀히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명성이란 항상 오해의 총합에 지나지 않으니까. ‘키스’는 클림트의 나이 45세, 그의 완숙기에 만들어진 주옥같은 작품이다. 형식을 보면 황금색 색채와 아르누보 문양으로 되어 있다. 빈분리파(Wien Secession·‘분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 활동을 목적으로 결성됐음을 의미)의 우두머리인 클림트가 인상주의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려준다. 인상주의로부터는 빛의 사용법을, 아르누보로부터는 자연의.. 더보기
이등병 러닝셔츠 차림의 앳된 병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딱 봐도 이등병이다. 짧은 가시처럼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에서 시작해 경련이 일 만큼 가지런한 눈과 입을 거쳐 불끈 쥔 주먹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사진가가 대놓고 시킨 것도 아닐 텐데, 카메라 앞에서 그는 완전한 ‘얼음’ 자세다. 온 생애를 통틀어 가장 긴장하고 있을 그 모습은 국방부의 홍보 사진 속 늠름함과는 다른 안쓰러움마저 불러일으킨다. 군대에 들어가는 순간 딴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집단이란 참 무서운 곳이다. 사진가 강재구는 사진병으로 복무했다. 처음에는 이등병들의 사병증명용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몸짓, 표정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대를 하고 나자 자연스럽게 훈련장에서 만난 예비역들에게 시선이 멈췄다. 새.. 더보기
잭슨 폴록의 캔버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은 경매에서 수백억원에서 천억원대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 최고가로 낙찰되곤 한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 저 정도 그림쯤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로 생각했다. 그런 폴록에 대한 폄하의 시선이 바뀐 건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서 회고전을 본 이후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림이 진정 영혼 혹은 정신이 물질화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자 그림을 보고 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안겨준 사건이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유럽 중심의 미술이 미국으로 옮겨지던 1940~1950년대에 태어난 가장 미국다운 미술 양식이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추상’이란 회화의 형식을, ‘표현’이란 그 내용을 의미한다.. 더보기
쥐 잡기 두 명의 나팔수가 앞장을 선다. 음악까지 등장시킨 것으로 봐서 꽤 그럴싸한 행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팔수 뒤로는 키 순으로 늘어선 체육복 차림의 빡빡머리뿐이다. 절도는 있지만 좀 어설퍼 보인다. 그나마 그 절도도 양복을 빼입은 채 학생을 인솔하는 행진 오른쪽의 선생님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의미심장한 행진의 정체는 도열 끝 피켓이 쥐고 있다. 바로 쥐 잡는 날. 쥐잡기 운동이 온 나라에서 펼쳐지던 1967년 풍경이다. 반공방첩대회며 전국체전, 국군의 날 등 걸핏하면 학생들이 봉처럼 행사 들러리를 서던 ‘관제동원’의 시대였지만, 특히 그 무렵 쥐잡기는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해서 쥐잡는 일은 학교 공부보다도 중요한 ‘과업’이었다. 당시 농림부가 추산한 쥐는 9000만마리로 한 가구당 평균 18마리.. 더보기
세잔의 사과, 먹고 싶지 않은 세잔의 사과는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이빨이 작살날 것 같다. 그만큼 딱딱하고 견고해 보인다. 보통 세잔은 사과 하나로 미술계를 제패한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사과와의 인연은 부르봉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훗날 프랑스 유명 문학가로 성장하게 될 에밀 졸라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파리에서 온 졸라는 특유한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그때마다 세잔은 졸라를 두둔했다. 그런 어느 날, 졸라가 세잔의 집으로 사과 한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사과로 진짜 우정이 시작되었던 것! 그러나 세잔이 사과를 그린 것은 단순히 우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잔의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정물화 한 점을 그리기 위해 100번 이상 작업했고, 인물화를 그릴 때도 모델을 15.. 더보기
릴케와 로댕의 섬세한 인연 “니콜라스 3세의 발이 울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 로댕은 벌써 알았던 것이다. 우는 발이 있다는 것을, 완전한 한 인간을 넘어서 울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모든 땀구멍에서 솟아나는 엄청난 눈물이 있다는 것을.” 나를 울컥하게 만든 릴케가 쓴 로댕론의 한 대목이다. 젊은 시절 릴케는 로댕의 비서였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전시 중이던 로댕의 제안으로 1905년 9월15일부터 1906년 5월12일까지 로댕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비록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사소한 오해로 결별했지만, 릴케는 로댕의 위대한 작품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강연과 글을 쓰는 등 로댕을 전파하는 사도 역할을 했다. 릴케는 로댕을 만난 것을 일생의 큰 행운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위대한 조각가를 만났던 일이 어떤 문학작품보다 자신.. 더보기
밤의 미로 도시는 도무지 투명하지가 않다. 한때 서울은 일단 발만 들여놓으면 어제보다는 잘살게 될 것 같은 꿈의 도시였는데, 이제 그 꿈을 먹고 공룡으로 자라버린 것일까. 분주하고 화려한 도시의 거리를 쏘다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오히려 한없이 쓸쓸해진다. 도시 속의 나는 늘 작고, 도시라는 공룡은 그런 나를 골탕이라도 먹일 듯이 여기저기로 몰고 다닌다. 도무지 숨을 고를 수가 없다. 김태동의 ‘데이 브레이크’는 천의 얼굴을 지닌 대도시의 밤과 마주하는 작업이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밤은 도시의 특권이자 화려함의 상징이지만, 작가에게 밤은 화장을 지운 도시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차들이 뜸해지고 전화기의 울림이 잦아들고, 빛들이 조도를 낮추는 밤이야말로 도시가 본색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엄밀하.. 더보기
책과 해골, 헛되니 어쩌라구! 책 그림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 그래서 화가들도 즐겨 그린다. 미술에선 이런 걸 소재주의라고 부른다. 호감 살 만한 소재로 가볍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말이다. 그런데 책 위에 해골이 놓여 있다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우리라면 거부했을 법한 이런 그림을 네덜란드인은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취향을 담은 네덜란드 정물화를 일컬어 바니타스(vanitas·허무, 허영, 영어는 vanity)화라고 한다. 사실 모든 정물화는 바니타스를 의미한다. 특별히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명명할 때는 해골, 책, 골동품 등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보다 직설적인 메시지를 드러내는 경우이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30년전쟁’ 이후 1650~1660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그려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