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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씻으면 없어질까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직 이 지구에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깨끗한 곳이 남아 있을까요? 사람들의 영역은 점점 늘어나고 그에 따라 쓰레기와 병균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깨끗한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또 다른 오염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곳은 이제 깊은 바닷속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날 커다란 고래가 깊은 바닷속에서 솟아나는 깨끗한 물을 잔뜩 머금고 와서 더러워진 우리들을 깨끗하게 씻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보기
애도공식 사람의 슬픔은 무게나 부피로 측량할 수 없다. 다만 거리가 있을 뿐이다. “이제 그만큼 했으니 그만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거리가 있는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러나 불행히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은 거의 없다. 나와 내 가족은 절대로 그런 입장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즈음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그 해답이 명료해진다.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코로나19에 걸릴 불운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4·16 세월호를 기억하게 하는 그날은 매년 다가오고, 아픈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주용성은 간접적인 목격자이다. 이곳에 시선을 집중한 채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세상이 진실과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 밝히려는 젊은 사진가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현.. 더보기
동백 제주 4·3이 70주기 되던 2018년, 4·3을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이, 전보다 더 많은 곳에서, 전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이효리가 추념식에 참석해 시를 낭송했고,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다. 동백은 지고, 벚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에 광화문 앞에서는 연일 행사가 열렸다. 사람들은 박경훈 작가가 그린 그림으로 제작한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달고, 4·3을 만났다. 긴 세월, 제주 4·3의 진실을 전하는 작품활동을 이어온 작가가 동백꽃잎을 모티브로 4·3 기억 배지를 처음 디자인한 것은 60주기 되던 2008년이었다. 당시에는 몇몇 활동가들만이 가슴에 달고 다녔던 배지가 10년이 더 흐.. 더보기
봄꽃 그림 커다란 나무틀을 우연히 얻었습니다. 보통 종이보다 더 큰 틀이라 인터넷으로 겨우 큰 종이를 주문하여 그림틀을 만들었습니다. 방 안 가득 커다랗고 하얀 네모난 공간이 저를 압박해 옵니다. 무엇을 그려야 할까.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림들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칙칙한 그림보다는 예쁜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계절에 맞게 봄꽃들을 그려 봅니다. 개나리, 제비꽃, 벚꽃, 양귀비, 매화, 진달래와 초록 새싹들…. 아무리 그림을 예쁘게 그리려 해도 창밖에 피어 있는 봄꽃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봄은 깊어가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방 안 가득 봄꽃들을 그림 속으로 불러와 봅니다. 더보기
무연고지 주소가 사라진 집과 골목과 동네의 풍경이 도시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거쳐간 사람들은 연고지를 잃게 되고 이곳은 유령의 공간이 된다. 치솟은 빌딩의 그림자가 되어 흉터처럼 남아 있는 곳. 도시는 날로 발전하는 반면에 폐허의 공간은 늘어나고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버린 채 빈집이 그대로 방치된 동네에 들어서면 공포와 아픔을 함께 느낀다. 사람들은 떠났어도 왜 그들의 체취는 방 구석구석의 먼지와 때로 남아서 탄식처럼 다가오는가. 한때는 ‘보금자리’라고 여겨 동고동락했던 침실과 주방은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공간이 되어 사람을 배척하고 있다. 더러는 새 아파트로 떠나고 가난한 자와 늙은이들만 뭉그적거리다가 퇴출당한 곳. 그리하여 빈집은 번지수가.. 더보기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 우리 주변 다양한 건축 시설물들의 기원은 대부분 근대사회의 제도 속에서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학교는 균질한 수준의 노동자 육성을 목표로 한 근대 공교육 제도에서 출발하였고, 심신이 건강한 시민을 재생산하기 위해 종합병원이 생겨났다. 신체 체벌형에서 교화를 위한 감금형으로 근대적 형집행의 사상전환에 의하여 오늘날의 감옥 시설이 나타났다. 박물관은 분류학의 등장으로부터, 철도역은 새로운 이동수단의 발명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시설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장치이기도 하다. 건축공간과 제도는 서로 뗄 수 없는 상호의존적 요소이며 건축의 즉물적인 힘을 통해 비로소 제도는 완성된다. 영어단어 institution은 ‘제도’란 뜻과 동시에 ‘시설’이란 의미도 있다. 시설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지하는 .. 더보기
회귀 딱히 돌아가고 싶은 시점이 있는 건 아니다. 아니다. 이 시큰둥한 마음은 어쩌면,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 모두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역설적으로 튀어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보기 전. 면접에 들어가기 전. 탈락하기 전. 집값이 오르기 전. 주식이 폭등하기 전.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건물이 무너지기 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 전쟁이 나기 전.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 웹소설 한쪽을 점령하고 있는 ‘회귀물’을 뒤적이다보면, 지금 여기를 함께 살고 있는 자들의 아쉬움, 미련, 후회, 욕망이 눈에 들어온다. 한번 살아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살이에 대한 노하우와 미래에 대한 정보로 무장한 ‘젊은’ 회귀자는 과거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며 그의 인.. 더보기
낯선 시간 2002년은 월드컵축구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덩달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한밤중에도 동네가 들썩들썩했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모두 풀이 죽어 있을 때 축구 경기 하나가 온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우리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에도 좌우가 갈라서는 오늘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김영경은 저물어가는 대도시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거대한 도시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의 프레임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정직한 기록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작가 특유의 색감에 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사진에 색깔로써 자신의.. 더보기
물리적 거리 두기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자고 합니다. 저의 하루를 되돌아봅니다. 매일 출퇴근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부딪히고, 사람 많은 곳에서 같이 밥을 먹고, 빌딩숲 사람들과 산책을 하며 커피도 마시고, 회사 동료들과 사무실에서 일하고, 헬스장에서 같이 땀 흘리며 운동도 합니다. 제가 하루를 보내면서 가까이 지나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물리적 거리가 가깝게 생활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이젠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당분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봄은 왔으나 이렇게 떨어져 있는 우리들의 공간은 아직 겨울입니다. 더보기
‘착한 대학’은 없을까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강력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대학들도 캠퍼스를 폐쇄했다. 강의는 온라인으로 옮겨 갔다. 지난 22일 기준 연세대, 한남대, 홍익대, 서울대, 경희대 등 다수의 대학들이 비대면 강의 연장을 확정했다. 필수적 예방의 일환으로 개정된 교육방법에 대해선 교수와 학생 모두 이해하는 입장이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분위기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이 한 달 단위로 규정된 등록금 면제 최소 휴업 기간을 고려한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콘텐츠 부실, 실험·실습 부재에 따른 교육의 질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후자는 등록금 감면 혹은 재정적 배상 요구의 배경이다. 실제로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예술대학생네트워크 등은 .. 더보기
격리 예술계 정보를 전하는 웹사이트 이플럭스를 열었더니, 헬멧을 쓰고 앉아 있는 휴고 건즈백의 이미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로 인류가 처한 오늘의 상황과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볼 만한 키워드, 읽어볼 만한 글을 공유하자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에디터는 그 첫번째 키워드로 ‘전염’을 제시했다. “과학소설은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뒤섞인 멋진 로맨스”라고 정의한 휴고 건즈백은 발명가이자, 저술가, 잡지 발행인으로 살면서 기발한 발명품을 발표하고, 과학소설 잡지를 창간하는 등 현대 기술을 예견하고 과학소설의 미래를 개척한 인물로 꼽힌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발명품 ‘아이솔레이터’는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시야를 한정시키는 도구다. 나무로 제작한 헬멧에 산소통을 연결할 수 있어 착용해도 호흡엔 지장이 없다. 사.. 더보기
하얀 문 어떤 훌륭한 건물도 문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안을 볼 수 없다. 건물 안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다. 건물에서 문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핵심이다. 아무리 비싸고 멋진 건물이라도 문이 없으면 그것은 한 물체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은 소통의 창구이자 폐쇄와 욕망의 장치이기도 하다. 위엄 있게 잘 갖추어진 고급 빌라,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진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건물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문을 먼저 확인한다. 나오는 길을 못 찾을까봐서이기도 하고 공간을 못 본 채 눈앞에서 유혹하는 물체에 갇혀 버리지나 않을까 해서다. ‘놓다, 보다’의 사진작업을 하면서 숲에 오브제를 가져다놓고 촬영을 했다. 숲에 문을 .. 더보기
봄나들이 가자 봄을 먼저 맞이하러 들판으로 달려가봅니다. 아직 찬바람이 불고 그늘 쪽은 겨울이지만, 햇살이 비치는 곳은 따스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연초록 새순들이 나뭇가지에서 크고 있고, 노랑 분홍 하얀 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났습니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은 팽팽한 목줄을 당기며 뛰어다니려 하고, 아이들은 마스크를 끼고도 힘차게 뛰어놀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답답하게 봄을 맞이하고 있지만, 빨리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마스크를 벗고 봄을 가슴속 깊이 맞이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더보기
빗살무늬토기와 브랜딩 빗살무늬토기(사진)는 신석기 농업 문명을 대표한다.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전환되자 수확한 곡식을 저장할 용기가 필요해졌기에 신석기 사람들은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빗살무늬토기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진흙을 적당히 반죽한 다음 둥글고 긴 띠를 만든다. 이 띠를 빙빙 돌려 그릇의 형태를 만든다. 그릇의 형태가 완성되면 표면에 진흙을 발라 평평하게 만든 다음 장식적인 무늬를 새긴다. 마지막으로 그늘에 말리거나 불에 굽는다. 초기에는 토기를 땅에 묻었기 때문에 아래를 둥근 모양으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표면에 새겨진 촘촘한 무늬다. 자세히 보면 토기마다 무늬가 다르다. 사실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작업은 무늬 새기기이다. 그럼 신석기인들은 왜 그토록 정성껏 무늬를 새겼을까? 여기서부터는 상상.. 더보기
간호사 예술가들이 즐겨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몫이다.” 해결책 없는 문제제기나 질문은 염증을 일으키지만, 탁월한 질문은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참여하지도 않은 전시에 참여했다는 거짓말을 한 뒤 ‘거짓말이 나의 출품작이었다’고 한다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사진을 재촬영하여 제작한 ‘새로운 초상화’ 시리즈를 완판시키며 예술의 창작과 모방, 복제 논란에 또다시 불을 붙였던 리처드 프린스는 늘 광적으로 이것저것을 수집하고 들여다본다. 그는 전유와 도용, 모방으로 미국의 대중문화와 유머를 미술 안에 끌고 들어와 일상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질문을 던지는 데 능숙하다. 그는 사스로 인해 전 세계가 히스테리의 최정점에 도달한 2002년 당시.. 더보기
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꽃도 시절을 잘 타고나야 더 빛나게 핀다. 이번 겨울은 포근해서 눈 한번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추위가 없을까 했더니 얼마 전에 눈이 펑펑 내리고 강추위가 지나갔다. 우리 아파트 양지바른 화단의 매화는 이미 한겨울부터 가지 끝에 진주알을 머금은 듯 봉오리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날마다 집을 들고나며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니, 조금 이르지 않니?” 말을 걸어 보는데 눈치도 없이 몇 개의 봉오리를 일찍 터뜨려 놓고는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또 산책길 옆 조그만 텃밭에서 피는 홍매화는 매년 사람들에게 새로운 봄을 알려주는 깜찍하고 가녀린 녀석이다. 이 나무도 피다만 봉오리가 얼어서 피멍이 든 붉은 입술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번 겨울이 따뜻했기에 더 상처가 깊은 모양이다. 그 .. 더보기
행복한 순간 아무것도 안 하고 편안하게 쉬고 싶어졌습니다. 멀리 떠날 수 없기에 예전 여행 다녔던 사진들을 찾아봅니다. 따스한 햇살 속 시원한 그늘에서 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편안해 보입니다. 상쾌한 공기와 맑고 깨끗했던 바닷속이 생각납니다. 불과 1~2년 전 사진이지만 사진 속 가족들은 지금 모습보다 훨씬 앳되어 보입니다. 아이들은 쑥쑥 빨리 커버리고 어른들은 팍팍 빨리 나이 들고 있는 듯합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순간순간이 소중해집니다. 올해 봄과 내년 봄의 사진 속 가족들의 모습은 또 달라지겠지요.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어릴 때, 조금이라도 내가 젊을 때, 조금이라도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겠습니다. 더보기
기술의 진보로 점점 옅어지는 공간의 의미 18세기 세균학이 정립되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오염된 공기가 전염병을 전파한다는 공기감염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치유의 공간인 병원 건축은 늘 공기의 흐름이 주요 과제였다. 과학자 보일의 기체 연구를 토대로 병실의 환기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한가지 방식은 과 같이 커다란 풀무를 건물 외벽에 설치하여 정화된 공기를 주기적으로 공급하였고, 또 다른 방식은 와 같이 공기 흐름을 고려한 건축물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의사 마레와 건축가 스프로의 협업에 의한 1782년 설계도를 보면 병동은 공기가 흐르는 형태 그 자체를 따른다. 평면적으로 모서리 없이 부드럽게 호를 그리며 단면적으로는 위가 좁고 높은 반원형 곡면을 통해 공간 자체가 공기를 자연스레 통과하는.. 더보기
민주주의의 위선 이란에서 태어난 화가 알리 바니사드르에게 ‘소리’는 작업을 풀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다. 탁월한 공감각 능력을 타고난 그는 소리가 전해주는 이미지를 그 영감과 연동하는 붓질로 화면에 펼친다. 구상과 추상의 결을 오가며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작가는 우리의 언어가 포착하지 못하는 성찰, 언어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유를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자신의 공감각적 재능을 알아차린 건, 그의 어린 시절을 온통 지배했던 전쟁의 소리 덕분이다. 그의 가족은 이란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았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의 포화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일상을 지배하는 전쟁 소리를 피할 수 없었던 그의 내면엔 파괴의 소리가 각성시키는 이미지가 차올랐다. 전쟁의 혼돈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작업은 페.. 더보기
어둠을 이기고 김동욱의 사진은 기록적이고 지시적이다. 그가 지정한 프레임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의 대도시다. 대낮의 혼잡함 속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함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서울의 밤 풍경에 주목했다.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고 흔적과 기억만 남은 적막한 풍경을 장 노출로 찍어서 야간 조명이 인조 보석처럼 반짝인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외젠 아제’의 풍경처럼 초현실적인 아우라를 보여준다. 거기다 건물의 건립연도와 이력까지 조사해서 밝혀준다. 여기까지 보면 일상성의 낯설게 보기, 기록, 흑백의 장중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예시한 사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