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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02 고등어
  2. 2018.10.30 16만3000광년
  3. 2018.10.26 장난감 로봇
  4. 2018.10.25 서계(西溪) 사랑채 누마루에서
  5. 2018.10.22 그릴수록 사라지면
  6. 2018.10.19 탁구채
  7. 2018.10.19 강력한 열망
  8. 2018.10.15 버려진 신의 껍데기들
  9. 2018.10.12 순한 양아저씨
  10. 2018.10.12 80년생 아파트
  11. 2018.10.11 박세당 고택
  12. 2018.10.08 익숙함과 낯섦 사이
  13. 2018.10.05 아는 얼굴
  14. 2018.10.05 가을 전어
  15. 2018.10.01 초속 5센티미터
  16. 2018.09.28 동물원과 권총
  17. 2018.09.28 목마
  18. 2018.09.27 우저서원
  19. 2018.09.27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
  20. 2018.09.21 마주 앉기

나무도마에 아크릴(35×21㎝)

 

아들이 고등어 추어탕을 좋아한다고 가끔 고향 집에 갈 때마다 손 크신 어머니는 추어탕을 한솥 해 놓으십니다. 고등어를 푹 삶아 일일이 손으로 뼈와 잔 가시를 발라내고, 남은 살들을 잘게 부수어 된장과 방아를 넣고 푹 끓입니다. 그리고 먹기 전에 산초, 마늘, 고추를 넣어 알싸하고 맛있는 경상도식 추어탕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객지 생활을 너무 오래 해 입맛이 변한 아들은 맑게 끓이는 경상도식 추어탕보다는 서울 대부분 식당에 파는 걸쭉한 전라도식 추어탕을 더 맛있어 합니다. 그러나 고향 집에 갈 때마다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기억하고 힘들게 만드셨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고등어 추어탕을 배가 터지도록 맛있게 먹어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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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모든 것이 말라붙는 건기를 지나 우기에 접어들면, 우유니 소금사막은 지평선을 지우고 하늘과 땅이 하나인 양 우주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어떤 국가의 소유물도 아닌 공기 안에서, 바람과 태양열만을 이용하여 비행하는 삶을 꿈꾸는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는 2016년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을 찾았다.

 

그는 물이 차오른 사막 위를 걸으면서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별빛이 물에 반사되는 밤풍경 안에서는, 마치 별들 사이를 걷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 안에 우유니 사막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자리 잡았다.

 

토마스 사라세노, 16만3000광년, 2016, 디지털 비디오, 컬러, ⓒ 토마스 사라세노 스튜디오

 

“지구인의 눈에 세상 모든 풍경은 과거의 것이다.” 우주 성운 사이를 누비는 기분에 취한 그는 우유니의 대기 안에서 16만3000년 전 대마젤란운에서 방출한 빛을 보는 중이었다. 우주가 태어났을 때 이미 존재했던 시간 안에서 지구인은 공존하고 있으며 그때의 사건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시간의 밀도가 높은 이 우주 속에서, 모든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외면하며 사는 것은 어려웠다.

 

“현실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사라세노에게 그의 지인이자 감독인 알렉산더 클루게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현실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 본질의 한 부분이다. 인간은 철저히 현실의 반대쪽에 존재하는 것에 욕망을 품는다. 인간은 욕망으로부터 단절되느니 차라리 거짓을 선호한다.”

 

클루게의 답변을 뒤로하고, 사라세노는 16만3000년의 시간을 품은 우유니 소금사막에 플라스틱 비닐 구름, 화석연료가 만든 유독성 구름을 띄워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지구인에게, 우리를 증명하는 방법은 과연 ‘오염’의 발자국밖에 없는지 묻기 시작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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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캔버스에 아크릴(61×72㎝)

 

길을 걷다 어느 가게 진열대에 놓여 있는 어릴 때 좋아했던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장난감 로봇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살 돈도 없었고, 또 엄마한테 혼날까 봐 살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진열대의 로봇 밑에는 어릴 적 느꼈던 가격만큼이나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제는 돈도 있고 혼낼 사람도 없지만, 그냥 한번 만져만 보고 다시 그 자리에 올려 둡니다. 그 대신 내 기억 속의 작은 보물상자에 넣어 오래오래 간직해 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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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포천에서 의정부를 지나 서울로 나서자면 포천과 의정부의 경계를 이루는 축석고개를 지나게 된다. 도로를 따라 고개 정상에 이르면 갑자기 가까이 있는 산들과 함께 저 멀리 도봉산의 원경이 하나로 어우러진 멋진 산수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축석고개를 내려와 자동차전용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또 하나의 고개인 장암고개를 지날 때에는 앞서 멀리 보이던 도봉산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시시각각으로 계절의 옷을 바꿔입고 눈앞에 나타나는 도봉산의 모습에 종종 빠져들곤 한다.

 

 

의정부 장암고개 끝자락과 수락산의 서쪽 끝자락이 만나는 지점에 지난 원고에서 소개한 서계 박세당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글에서는 수락산 계곡에서 바라본 고택의 모습을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그리고 고택 안으로 들어와 한국전쟁 때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도봉산의 느낌을 한 줄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나는 서울로 나올 때마다 두 고개에서 마주하는 도봉산의 강한 느낌을 한 번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도봉산의 모습을 이 고택의 사랑채에서 제대로 관조할 수 있었기에 그 감동을 그림과 함께 부연해본다.

 

서계 박세당 고택의 사랑채는 서향을 바라보고 있다. 대지가 넓어 남향으로 배치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서향을 택한 이유는 서쪽에 도봉산이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뒤쪽으로 수락산이 주산(主山)이 되고 사랑채 앞쪽에는 중랑천이 있어 배산임수(背山臨水)에다 앞쪽의 도봉산이 안산(案山)이 되는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옆으로는 수락산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이 계곡 쪽으로 관어정(觀魚亭)이라는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이 누마루에서 창문을 열면 옆쪽의 계곡과 저 앞쪽으로 도봉산의 주봉들이 모두 바라다 보인다. 이 사랑채야말로 서계가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을 벗삼아 글을 쓰고 제자를 가르치며 세월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으리라.

 

박세당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여 머리를 깎고 수락산 동쪽에 들어와 은거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을 흠모했다. 그는 김시습이 수락산의 동쪽에 자리 잡고 동봉(東峰·동쪽의 봉우리)이란 호를 쓴 것에 대비하여 서계(西溪·서쪽의 계곡)라 호를 짓고 동봉을 추모배향하기 위한 청절사를 건립하기도 했다.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계곡의 물소리와 아름다운 도봉산에 젖어 세상을 등지고 수락산에 묻혀 살았던 동봉의 삶을 살려 했던 서계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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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박세진, 검은 그림, 흰 그림(feat. 부원희 작가의 시 ‘부동시’), 2018, 캔버스에 유채, 50.5×60.8㎝, ⓒ박세진 누크갤러리 제공

부원희의 시구절처럼 ‘자꾸만 갸웃대며/뒤뚱거리는’ 날들을 보내면서 화가 박세진은 검은 그림을 그렸다. 애초에 검은 캔버스는 물감을 올려 색과 형태를 표현해봐야 그저 삼켜버렸고, 반복적으로 쌓은 유화물감의 반사층만 남아 간혹 반들거렸다. 박세진은 검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릴수록 사라지는 지난 1년의 노력과 고생 끝에 깨닫고 말았다. “흰색 바탕에서 시작했으면 쉬웠겠다.” 검은 화면에서 형태는 뭔가 지나가고 난 뒤의 흔적처럼, 어쩌다 남은 얼룩처럼 있었다. 애초에 흰색 바탕을 선택하지 못한 그는, 흔적과 얼룩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위한 다른 통로가 필요하다.

 

화가는 햇빛 찬란한 여름날 역광 안으로 들어가 그 한때의 어두움을 캔버스에 담았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인물인 듯, 돌인 듯 무언가를 앉혔다. 어쩌면 ‘구도’ 중일지도 모를 ‘이것’은 흔들림이 없이 꽤 고요하다. 그림 바깥에서는 여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작가는 역광 한구석에 오리 무리와 앉았다. 어둠 속에서 하얀 오리들은 꽤 역동적이고, 화가도 그렇다.

 

그는 자기 발밑에 흰 그림과 (보이지도 않는) 검은 그림을 던져놓은 채, 예전에 그렸던 그림을 회고하고, 지인이 보내온 박경리 선생의 오리 사진을 생각하고, ‘공간이 움직이는 순간을 들려주는 힘’을 가진 시인의 시구절도 떠올려보느라 그 나름 분주하다. 그는 약속된 시간 안에 그림을 그리지도 못했으면서, 두리번거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그림 바깥 오른쪽 공간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다. 얼룩처럼 어둠에 깃든 채, 약속된 시간을 유예하는 그는 지금, 이 어둠이 고마울지도 모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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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채에 아크릴(26×14㎝)

 

버려진 탁구채 한 쌍을 주웠습니다. 손때 가득 묻어있는 두 개의 탁구채. 한창때는 서로 땀을 뻘뻘 흘리며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경기를 했을 탁구채. 그러나 이제는 둘 다 흥미를 잃었는지, 아니면 한 사람이 흥미를 잃었는지 같이할 사람이 없어져 버린 손때 묻은 탁구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탁구처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사랑처럼 서로 주고받으며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그렇게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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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8월 어느 달 없는 밤, 해양생물학자 루이 부탕은 프랑스 남부 바뉼쉬르메르 지역의 바닷가에서 배에 짐을 싣고 있었다. 산소를 채운 커다란 나무통과 수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램프 등 온갖 장비를 싣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 대단한 해양탐사가 시작되는 낌새를 풍겼던 루이 부탕의 목표는 당연히 미지의 해양생물일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바닷속에서 연구한 대상은 바로 ‘사진’이었다.

 

에밀 라코비차, 1899년 ⓒ루이 부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중사진’이 바로 그날의 연구 결과다. 루이 부탕은 수심 50m에서 루마니아의 해양학자 에밀 라코비차를 촬영했다. “Photographie Sous Marine(수중사진)”이라고 쓰인 팻말을 든 모델과 촬영자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수심 50m에서 30분 동안 질소마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최신식 장비를 갖춘 현대의 스쿠버다이빙이라도 수심 50m에서는 3분 이내로 잠수 시간을 제한한다. 이를 감안하면 루이 부탕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그 무모함은 강력한 열망의 방증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낯설어서, 그 장면을 그대로 스케치하고 싶었다. 늘 바닷속에서 본 풍경을 수면 밖으로 건져내기를 갈망했다.” 루이 부탕이 했던 말에서 어떤 힌트를 얻는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달라져도 계속 사진을 찍는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말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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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유로 신내림을 받고, 또 어쩌다 신과 소원해지는지 무당마다 다른 사연이 넘쳐나겠지만, 신기를 잃은 무당은 그간 당집에 애지중지 모셨던 ‘신상’을 내다 버린단다. 관상학에서 말하는 호상, 당대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얼굴을 담아 만들었다는 불상 등 세상의 좋다는 형상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짜깁기해 자신의 신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굿을 해 신령을 모셨을 테지만, 끝이 오면 의미와 정성, 시간을 쏟아부었던 형상들과 가차 없이 이별한다.

 

김형관, 눈부신 그늘, 2018, 혼합재료, 가변설치 경기도미술관 제공

 

그들이 버린 신의 껍데기가 현대인들의 그림자에 주목해온 작가 김형관의 손에 들어왔다. 영험함을 상실한 최영 장군, 산신, 벅수동자, 선재동자 상은 2012년 그의 개인전 전시장에 등장한 이후 창고에 잠들어 있다가 2018년 ‘경기천년 도큐페스타’의 전시, ‘경기 아카이브_지금,’에 다시 나타났다. 경기라는 이름이 탄생한 지 천년이 된 것을 기념하며 과거와 현재를 기억, 기록하고 미래 천년을 내다보는 이 행사는 경기상상캠퍼스 내 (구)임학임산학관에서 열리는 중이다.

 

참된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 극락정토로 가기 위해서는 반야용선을 타야 한단다. 기획자는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는 이 건물을 ‘반야용선’이라 명명하면서, 이 전시가 경기인의 꿈을 싣고 미래 천년 경기의 바다를 항해하는 하나의 용선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사물이며 공간이 의미를 입고, 버리고, 또 다른 의미를 얻는 일은 되풀이된다.

 

기획자는 작가와 협의하여 1층 입구에 설치하기로 했던 신상을 옥상 위, ‘반야용선’의 꼭대기로 올렸다. 한때 사람들의 지독한 기도를 받아야 했던 신상이라면, 여전히 ‘영물’일지도 모를 일. 공기를 떠돌던 신들이 문득 발견한 이 신상에 잠시 머물다, 기도의 목소리를 듣고, 또 홀연 떠날지 누가 알까.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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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0×43㎝)

 

주인 말 잘 듣는 순한 양아저씨가 있습니다. 이거 내일 아침까지 해라. 저거 네가 대신해라. 바쁘니 야근해라. 불만 있니 웃어라. 순한 양아저씨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 주인이 양아저씨 털을 다 깎아버리고선 이제 필요 없으니 그만 나가라 합니다. 순한 양아저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늑대들이 숨어 있는 찬바람 부는 허허벌판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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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나무들은 녹색 파도처럼, 아파트는 떠다니는 하얀 배처럼 보인다. 녹색 바다를 이루는 나무들은 아파트의 나이테 역할을 한다. 몸집의 크기로 아파트 연령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흔을 앞둔, 1980년생 둔촌주공아파트는 철거를 진행 중이다.

 

둔촌주공아파트, 2016년 ⓒCDAPT

 

오래된 아파트가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도시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변화해야만 도시는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 생애주기를 아파트 단지와 동기화한 이들에겐, 그저 ‘흔한 일’로만 단념할 수 없다. 이곳이 고향이자 기억의 뿌리인 80년대생 아파트 키드를 중심으로 둔촌주공아파트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사진을 찍은 최종언 또한 아파트 키드이자 아파트 덕후다. 트위터에서 ‘CDAPT’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찍은 아파트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CD’는 그가 살고 있는 창동의 약자이며, 우연한 계기로 아파트 단지를 순례하면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공통적으로 또는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와 풍경을 수집하고, 이를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분류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철거 예정일에 맞춰 사라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를 확인하는 그의 사진은 사적인 애호로 출발했지만, 국내 아파트 생활과 문화의 공적인 기록·기억으로 자리 잡기에도 손색이 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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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장암역 주차장 맞은편에는 하나의 판에 4개나 되는 문화재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서계 박세당 사랑채와 박세당 묘역, 노강서원, 석림사 등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판이다. 수락산 등산로이기도 한 계곡변 좁은 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노라면 계곡 건너편에서 고즈넉하게 계곡 쪽으로 긴 처마를 드리우고 있는 오래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박세당 고택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계곡 쪽에 위치한 출입구는 문이 잠겨 있어 고택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여 계곡과 고택의 지붕이 어우러지는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오르던 길을 잠시 멈춰서 본다. 도로가 등산로이다 보니 연변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간판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있어 고풍스러운 한옥의 풍광이 제 맛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등산객이 많지 않던 시절 이런 계곡에 접해 있는 한옥의 누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멋진 시 한 수가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이 고택의 주인이었던 서계(西溪) 박세당(1629~1703)은 32세 때 문과에 장원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맡아 일을 하다가 결국 학문적 신념 때문에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낙향하여 집필과 제자를 가르치던 그는 이곳 사랑채에서 농사 관련 저술인 &lt;색경(穡經)&gt;을 집필하여 실사구시의 사상을 피력하였다. 그의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저서 &lt;사변록(思辨綠)&gt;은 당대의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결국 ‘사문난적(斯文亂賊:못된 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몰리고 유배되는 등 힘든 말년을 보내게 된다.

 

서계 고택은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바깥사랑채만 남게 되었다. 관어정(觀魚亭)이라고 현판이 씌어있는 바깥사랑채 뒤쪽에는 전쟁 때 타고 남은 안채의 자재들을 모아 건립한 영진각(影眞閣)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서계와 부친 박정(朴炡)의 영정 2점이 모셔져 있다. 사랑채 앞쪽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이 장소의 세월과 품격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서 서쪽을 바라보노라니 도봉산의 위용이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종부 김인순씨(65)와 사학을 전공했다는 며느리의 손길이 부산하다. 영진각에 모신 두 분의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준비하느라. 정2품 이상의 선조를 모신 가문에서나 가능하며 4대가 지나도 영구히 위패를 사당에 두면서 지내는 제사라 한다. 문중이 모여들 마당에 설치된 많은 행사용 천막의 숫자에서 이 가문의 기풍이 느껴진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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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주, T.P.A(트리거, 펄스, 앰플리피케이션),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 안정주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다. 그 새롭고 낯선 것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일은 순간, 곧 익숙해진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쩌다 낯선 상황을 만난다 해도 “이 정도 낯섦쯤이야!” 하고는 과거의 경험을 응용하여 적용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능숙하게 패턴을 발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세상에 새로울 것은 별로 없다.

 

익숙해서 편안하거나 지루하거나. 그 쳇바퀴 안에서 평범한 일생은 흘러갈 것이다. 소소한 개인사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처럼 많은 이들의 삶이 얽혀 있는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점차 무감각해진다. 한번 자리 잡은 ‘익숙함’을 흔드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 안정주는 그 익숙함이라는 표피를 전혀 다른 감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또 다른 질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현실을 재발견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이러했던 작가에게, 굳이 한글을 만들고 굳이 중국과 다른 음의 기준 ‘황종’을 만든 세종대왕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안정주는 세종의 음악적 업적 안에서 음악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선을 다스리고자 했던 한 행정가의 도전을 보았다. 작가는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에서 모티브를 얻어, 비디오 안에서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정간보의 소리기호를 오디오 신시사이저에 입력하면, 소리는 트리거(방아쇠)가 되어 진동을 일으키고, 증폭·변형되면서 자연발생적인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이 음악이 또 하나의 신호가 되어 ‘트리거, 펄스, 앰플리피케이션’의 과정을 거쳐 이미지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소리와 이미지의 익숙하고도 낯선 조응과 변주가 관객을 감싼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역사 속 정간보가 작동하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시스템의 탄생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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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코닐리어스, 셀프 포트레이트, 미국회도서관 소장

 

한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1839년에 촬영된 낡은 사진은 비록 유령처럼 희미하지만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오뚝한 콧날, 진지한 눈빛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코닐리어스, 미국 사진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럼, 이 사진의 촬영자는 누굴까? 바로 코닐리어스 자신이다. 프랑스에서 사진의 발명을 공표한 1839년과 같은 해에 벌써 셀카 사진이 등장한 셈이다. 코닐리어스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버지의 램프 가게 뒤편에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10분가량 꼼짝 않고 있다가 자신의 얼굴을 얻었다. 최초의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로 촬영된 이 사진은 세계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간주된다.

 

170여년 전 코닐리어스의 첫 장 이후, 오늘날 셀카 사진은 하루에 3억5000장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이미지라 그런지 별의별 사건도 발생한다. 위험천만한 곳에서 셀카를 찍다가 사망하거나, 한 10대 소년은 셀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셀카 중독 등의 부작용이 언급되는 요즘이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의 역사를 움직인 중요한 욕망이다. 사진이론가 존 택은 “사진이란 그저 자신들이 아는 이들의 얼굴 사진을 획득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는 얼굴, 또는 알고 싶은 얼굴이라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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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펜 아크릴 (36x26cm)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구이의 냄새. 그런데 정말 시어머니는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전어를 구웠을까요? 홀아비로 지낼 불쌍한 아들과 엄마를 찾는 가여운 손주, 그리고 이 둘을 다 보살펴야 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집 나간 몹쓸 며느리지만 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또 그렇다고 무능한 남편과 힘든 시집살이에 지쳐 집 나간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을 전어를 구우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대뜸 집으로 돌아갈까요? 며느리는 엄마 찾아 울고 있을 불쌍한 아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려 그 집을 기웃거리다 가을 전어를 굽고 있는 시어머니 옆에 있는 아이를 보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건 아닐까요?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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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초속 5센티미터, 2007, 애니메이션, 62분 ⓒ 신카이 마코토, 코믹웨이브 필름

 

빛이 1초에 30만㎞를 가고, 소리가 1초에 340m를 갈 때, 벚꽃은 5㎝를 갔다. 사실은 떨어졌다. 데뷔 초 1인 창작자로 주목받던 작가 신카이 마코토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벚꽃잎의 ‘느린’ 속도에 기대, 사랑과 상실, 그리움, 그리고 무기력의 감정을 소환했다.

 

‘초속 5센티미터’에 등장하는, 한때 어렸던 두 주인공은 같은 학교라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의 속도를 높인다. 이후, 여자주인공이 1500㎞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간 뒤, 물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가 조금씩 어긋나면서 이들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길을 떠난 어린 그는, 마침 쏟아져 내린 폭설 때문에 역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 정차하고 느리게 달리는 기차의 속도에 반비례하여 달아오르는 마음에 고통을 받았다.

 

서로를 향한 마음의 속도는 느림과 빠름 사이를 오가다가 서서히 멈추었다.

성장한 남자 주인공은 주변 다른 이들이 다 그렇듯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고, 생존해야 했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 무엇인가를 향해 남들처럼 손을 뻗고, 세상의 속도가 운행 중인 궤도 위에 발을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걷는 삶의 속도는 자꾸 어긋나, 궤도 위에 안착하지 못했다. 세상의 속도가 어지러운 그는 자꾸 머뭇거리고, 사람과의 거리, 사회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데 실패한다.

 

여자 친구와 마음의 거리를 1㎝ 좁히는데 1000통의 문자와 3년의 시간을 쓴 그는 이별을 맞이했다.

 

세상의 속도에 길들여지지 못하는 이가 세상 앞으로 다가가는 속도는 여전히 중력과 바람에 휘청이는 초속 5㎝다. 그사이 세상은 저만치 멀어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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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롱크스 동물원의 오타 벵가, 1906년, 미의회도서관 소장

 

1906년 이색적인 구경거리를 준비한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은 흥행 중이었다. 나이 23세, 키 150㎝, 몸무게 45㎏, 난생처음 본 동물 앞에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던져주며 환호했다. 몇몇 구경꾼들은 내심 기대했던 눈요깃거리가 못 되자 야유와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격렬한 환호와 야유를 한몸에 받은 새로운 구경거리는 바로 인간이었다.

 

아프리카 콩고의 피그미족 오타 벵가(Ota Benga)는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에 전시됐다. 그는 1904년 콩고를 침략한 벨기에군의 학살로 가족을 잃은 후 생포되어 노예 상인에게 팔렸고,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만국박람회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됐다. 동물원에 온 이후, 처음에는 사육사를 도와 침팬지에게 먹이를 주며 동물들을 돌보기도 했지만, 차츰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구경거리이자 동물원에 갇힌 신세라는 것을. 1910년 인권운동가들의 항의로 풀려난 벵가는 교육을 받고 담배공장에 취직하는 등 평범한 삶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1916년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타향에서 비극적인 생을 살다간 오타 벵가가 처음 전시됐던 박람회의 전시명은 ‘진화가 덜 된 사람들’. 사진 속의 청년 벵가가 우리를 응시하며 묻는다.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인가?” 그는 자살하기 전, 홀로 피그미족 전통 의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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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3.5×21.5㎝)

 

먼 길을 달려서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갑니다. 아무리 차가 막히고, 잠이 쏟아져도 부모님이 계신 그곳을 향해 달려갑니다. 주름진 아버지의 미소와 어머니의 투박한 음식은 먼 길 달려온 피곤함을 날려 버립니다. 부모님 앞에 앉은 나이 많은 아들은 철없는 아이로 돌아가 행복한 잔소리를 듣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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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대로 북변 사거리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이어진 중봉로로 접어든다. 직선의 도로가 크게 왼쪽으로 선회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로 내비게이션이 나를 안내한다. 좁은 길로 300m가량 직진하니 왼쪽으로 연잎이 무성한 연못 뒤쪽으로 우저서원의 단아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저(牛渚)서원은 중봉 조헌(重峯 趙憲, 1544~1592)의 생가 터인 김포시 감정동에 인조시대인 1648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중봉 조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도끼를 지고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청하는 도끼상소로 유명하다. 이듬해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게 점령되었던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10배가 넘는 왜군과 맞서 싸우다 700의사와 함께 전사한 의병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671년에 ‘우저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는데 서원 주변에 소들이 물을 먹는 늪지가 있어서 ‘우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이 우저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은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김포평야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솟을대문으로 된 외삼문을 들어서면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놓여 있고 중앙에는 강학 공간인 여택당(麗澤堂)이 있다. 팔작지붕의 여택당 뒤쪽으로 놓여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향 공간이 자리한다. 그 안쪽 중앙에 조헌의 위패가 있는 사당이 위치해 있는데 조헌의 시호인 ‘문열(文烈)’을 따라 ‘문열사(文烈祠)’로 불리고 있다. 보통 사당 앞에는 제향의식에 필요한 공간인 동무, 서무가 있는데 이 서원은 내삼문과 사당과의 간격이 좁아 우측에 조헌선생유허추모비를 모신 비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좌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우측에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서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서원 주변에는 도로명과 공원명, 마을명이 모두 ‘중봉’으로 되어 있다.

추석도 지났으니 이제 우저서원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단풍으로 곱게 물들 것이다. 단풍 가득한 우저서원의 가을 운치가 눈앞에 그려진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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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 퍼포먼스, 1984, 퍼포먼스, 사진 ⓒ박이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4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박이소(당시 이름 박모)는 교회 자선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인 가정의 추수감사절 만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신께 감사하며 다른 인종, 타 문화인에게까지 ‘은혜’를 베푸는 이날, 미국인들은 칠면조, 옥수수, 으깬 감자, 호박파이, 크랜베리 소스를 비롯하여 새 곡물로 만든 푸짐한 음식을 저녁식탁에 올리고, 미소로 동양인을 맞이했을 거다.

 

요새는 인간의 ‘은혜로움’이 더 멀리 뻗어나간 덕분에, ‘사면식’을 치른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동물원이나 농장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트럼프도 이 사면식에 동참했다 하니, 칠면조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은혜의 상징이다.

그날 이후 박모는 사흘간 밥을 굶었다. 단식은 그에게서 쓸모없는 기력을 빼앗는 대신 맑은 머리를 주지 않았을까. 단식을 마치고 그는 플라스틱으로 가마솥을 만들어 목줄에 매달아 끌면서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당시 가까이 지내던 작가 강익중이 곁에서 그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추수감사절이 나에게는 행복한 날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나는 이상한 퍼포먼스를 해서 아방가르드 미술가가 되는 제스처를 해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일종의 정치적 미술가라는 걸 보이고 싶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나 핑계가 필요해서 예술을 한다던 그의 ‘터무니없는 정직함’이 아궁이에 올라가는 순간 그대로 녹아 일그러질 플라스틱 가마솥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추수감사절이 가면 블랙프라이데이가 온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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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아크릴(30×42㎝)

 

밤하늘의 별도 따준다던 그 사람, 꽃보다 더 예쁘다던 그 사람,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던 그 사람. 말 안 해도 다 알 수 있다던 그 사람. 이제는 시간이 흘러 더 가까이 오랜 시간 같이 있게 되었지만, 그때의 그 감정은 점점 희미해지고 익숙함만이 남았습니다. 오늘 다시 예전처럼 따뜻한 커피 한잔 놓고 마주 앉아 눈을 보며 이야기해봐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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